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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무용] 시댄스 난민 특집(1)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에로틱한 시각적 호기심을 기대했는데, 불안감과 공포감을 경험할 수도 있다

발행일 : 2018-10-02 23:18:04

제21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2018, 시댄스 2018)가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주최로 10월 1일부터 19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KOCCA 콘텐츠문화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축제는 전 지구적 문제 ‘난민’을 다룬 국내외 예술가들의 특집 프로그램인 ‘난민 특집(Refugee Focus)’을 통해 글로벌 이슈를 조명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난파선-멸종생물 목록(WRECK-List of Extinct Species)>, <추방(Displacement)>, <국경 이야기(Border Tales)>, <부유하는 이들의 시(Poem of the Floating)>, <망명(Ex.iL)>, <칼날의 역설(MY PARADOXICAL KNIVES)>, <나의 배낭(Mon sac au dos (My Backpack))>, <볼프강(Wolfgang)>이 난민 특집의 작품이다.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실제 공연사진 대신 의상을 착용한 리허설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실제 공연사진 대신 의상을 착용한 리허설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 ‘난민’이라는 단어가 주는 책임감과 중압감! 스멀거리며 객석을 위협하는 커다란 검은 형체!
 
피에트로 마룰로 안무, 인시에미 이레알리 컴퍼니의 <난파선-멸종생물 목록>은 2018 에어로웨이브 선정 올해의 안무작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커다랗고 검은 형체가 무대를 넘나들며 객석을 위협한다.
 
이 검은 형체는 처음에 공연의 제목처럼 난파선일 수도 있고 멸종생물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크기는 크지만 미약한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바다를 장악하는 괴물 같은 이중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난민’, ‘난파선’, ‘멸종생물’ 등 작품의 주된 테마와 정서는 책임감과 중압감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유럽의 난민과 이주 문제를 암시하고 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이 볼 경우 내면의 억압과 절규가 떠오를 수도 있다.
 
◇ 어둠 속에서 진짜 난파된 바다에 있는 느낌! 불안감과 공포감!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난파선-멸종생물 목록>은 초반부터 진짜 어둠 속에서 난파된 바다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의상을 전혀 입지 않은 무용수들의 벌거벗은 몸은 난파된 영혼을 연상하게 만든다.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공연의 음향은 불안감을 증폭시키는데, 검은 형체의 위협적인 움직임과 무용수들의 정지된 동작에서는 공포감을 전달한다. 정서적으로 만들어지는 불안감은, 실제 검은 형체의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인한 관객의 반응인 공포감의 암시일 수도 있고 복선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무용수들이 나신으로 안무를 펼친다는 점도 우리에게는 불안감을 크게 만들 수 있다. 달달한 음악과 함께 펼쳐진 안무였다면 에로틱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음산한 음악과 함께 펼쳐진 안무는 감정이입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내 몸이 벗겨져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줬을 가능성이 많다.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더 이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난파선에 있는 것처럼, 나를 감싸고 보호할 수 있는 의상이 하나도 없는 물리적인 상황은 심리적인 면까지 그런 위험에 노출됐다고 느끼게 만들어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시각적인 호기심에 관람을 결정했다가, 내면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경험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처음에 가장 역동적인 존재는 검은 형체, 마지막에 가장 역동적인 존재는 사람들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초반에 가장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존재는 검은 형체이다. 어둠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면서 저렇게 형체를 변화하는지 궁금해진다. 반면에 무용수들은 움직임을 멈춘 정지 안무를 보여준다. 공연 초반 검은 형체와 무용수들은 같은 공간,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그렇지만 무용수들은 공연 후반부로 가면서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 적나라하게 역동적으로 표현한다. 그들은 옷을 벗어던져 자유를 만끽한다기보다는, 옷도 없는 상태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검은 형체는 관객석 안으로 들어와 맨 뒷좌석까지 갔다가 돌아오면서 크기와 형태가 변한다. 조명이 밝아지면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 무용수들의 나신은 오히려 더 예술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조명의 영향이었을 수도 있지만, 공연 동안 관객과의 교감을 통해 보이는 것 이상의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난파선-멸종생물 목록’ 리허설사진.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제공>

◇ 만약 무용수들이 옷을 입고 안무를 소화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만약 <난파선-멸종생물 목록>에서 무용수들이 본공연처럼 나신으로 안무를 소화하지 않고, 리허설처럼 의상을 입은 상태에서 본공연을 펼쳤으면 어땠을까? 호기심을 덜 느낀 관객이 있을 수도 있고, 마음이 더 편하게 관람한 관객이 있을 수도 있다.
 
불안감의 정서는 크게 고조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공포감을 주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난파선-멸종생물 목록>을 보면서 ‘난민’, ‘난파선’, ‘멸종생물’에 대한 생각과 관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 어떤 형태로 불편한 부분을 감추느냐에 따라 정서와 감정, 공감의 차이가 현저하게 날 수 있는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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