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베테랑 오야마 시호, 왜 존경받나](https://img.rpm9.com/news/article/2018/08/06/article_06154223065808.gif)
“나이스 버디!” 갤러리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참 동안 그린을 배회하던 볼은 거짓말처럼 컵 속으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마흔한 살 테베랑 오야마 시호(일본)는 마지막 18번홀(파5)을 버디로 장식하며 포효했다. 불끈 쥔 그의 오른 주먹은 다시 한 번 갤러리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우승 세리머니가 아니다. 챔피언 조 플레이도, 우승을 다툰 상황도 아니었다. 이날 오야마는 이븐파를 쳐 최종합계 이븐파 216타로 공동 24위에 머물렀다. 지난 5월 후쿠오카에서 열린 호켄노마도구치 레이디스 최종 3라운드 18번홀 그린 풍경이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풀리지 않는 대회였다. 버디 기회는 수차례 있었지만 퍼터가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오야마는 18번홀 그린 주변을 가득 메운 갤러리 앞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냈다. 비록 상위권은 아니지만 혼신을 다한 플레이였다. 그가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이유다.
육상선수(멀리뛰기) 출신인 오야마는 2000년 9월 정식으로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그의 전성기는 서른쯤에야 찾아왔다. 지난 2006년 5승을 달성하며 생애 첫 상금여왕에 올라 JLPGA 투어 판도를 뒤집은 것이다. 당시 7년 연속 상금여왕을 노리던 후도 유리(43·일본)의 아성을 무너트린 선수가 바로 오야마다.

JLPGA 투어는 5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많은 영웅을 탄생시켰다. 통산 11차례 상금여왕이란 불멸의 기록을 남긴 히구치 히사코(73), 생애 가장 많은 상금(13억6149만431엔)을 벌어들인 후도, 일본인 첫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미야자토 아이(33), 통산 24승과 두 차례의 상금여왕을 달성한 후쿠시마 아키코(45) 등이 대표적이다.
거기에 비하면 통산 18승의 오야마는 견줄만한 이력이 아니다. 미녀골퍼도 패셔니스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야마는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에게도 존경받는 선수로 빠지지 않는다. 김하늘(30·하이트진로) 역시 JLPGA 투어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어렵지 않게 오야마의 이름을 거론할 정도다.
레귤러 투어에 뛰는 몇 안 되는 40대라는 점과 컨디션이나 스코어에 상관없이 늘 밝은 표정으로 플레이한다는 점, 동료선수·미디어·골프팬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다는 점, 최악의 스코어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 등 존경받을 만한 요소가 많다.

무엇보다 승리의 세리머니는 그가 명품 골퍼라는 걸 입증한다. 골프는 다른 운동과 달리 경기 중 세리머니가 지극히 제한적이다. 세리머리라고 해봐야 버디 후 모자챙에 손을 얹거나 가볍게 손을 들어 갤러리 환호에 답례하는 정도다. 상대방의 좋은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고 함께 기뻐하며 하이파이브 하는 스포츠는 골프밖에 없다.
오야마 역시 경기 중 세리머니를 자제하는 인상이다. 하지만 마지막 18번홀에서 버디를 잡는 순간은 예외다. 주먹을 불끈 쥐고 승리의 세리머니를 만끽한다. 스코어가 상위권이든 하위권이든 문제되지 않는다. 혼신을 다해 플레이한 뒤 그린을 둘러싼 갤러리와 마지막으로 호흡을 함께한다.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긴 오야마다. 온몸은 종합병동이라 할 만큼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스코어는 좋은 날보다 좋지 않은 날이 훨씬 많다. 올해 출전 9개 대회가 그의 체력과 몸 상태를 대변한다. 세리머니 자체가 부담스러운 나이다.
“스트로크 후에는 마음까지 볼에 실어 보낸다.” 승리의 세리머니를 의아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던진 그의 답변이다. 마지막 스트로크에 온몸을 불태우고 마음까지 실어 보낸다. 팬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승리의 세리머니는 오야마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매 라운드 18번홀에는 오야마의 세리머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일찌감치 진을 친 사진기자도 있다. “대회에 출전한 이상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아무리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스윙만 할 수 있다면 포기하지 않는다.” 투혼이 빚은 명품 세리머니다. 하타오카 나사(19) 등 황금세대의 약진 속에서도 흐릿해진 투혼이란 단어를 일깨워준 울림 있는 세리머니다.
필자소개 / 오상민
골프·스포츠 칼럼니스트(ohsm31@yahoo.co.jp). 일본 데일리사 한국지사장 겸 일본 골프전문지 월간 ‘슈퍼골프’의 한국어판 발행인·편집장 출신이다. 주로 일본 현지 골프업계 및 대회장을 취재한다. 일본 가압골프추진기구에서 골프 전문 트레이너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