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주최 <니키 드 생팔展 마즈다 컬렉션(Niki de Saint Phalle works from the Masuda collection)>(이하 <니키 드 생팔展>)이 6월 30일부터 9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전시실, 제2전시실에서 전시 중이다.
<사격회화 shooting painting>를 통해 현대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1930~2002)의 서울 첫 단독 전시이며,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열리고 있다. <니키 드 생팔展>은 ‘Ⅰ. 개인적 상처와 치유’, ‘Ⅱ. 만남과 예술’, ‘Ⅲ. 대중을 위로하는 상징’으로 구성돼 있는데, 본지는 3회에 걸려 리뷰를 게재할 예정이다.
니키는 미술치료를 계기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니키 드 생팔展>을 직접 관람하면 어떤 작품에 상처가 있고 어떤 작품에 치유가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작품에 상처와 치유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경에서 볼 때 하얀 하트의 아름다운 작품을 다가가서 근경으로 보면 작품을 이루는 작은 요소들에는 슬픔과 분노, 억울함이 그대로 존재하기도 하고, 멀리서 볼 때 무서운 해골의 모양인데 가까이에서 보면 찬란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도 한다.
니키는 미술을 통해 세상 앞에 당당해질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아픔과 상처는 죽을 때까지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긍정적으로 승화되고 순화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Niki de Saint Phalle, Nana Fontaine Type, 1971/1992 ⓒ 2017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 ADAGP, Paris - SACK, Seoul](http://img.etnews.com/news/article/2018/06/30/cms_temp_article_30200758267959.jpg)
필자는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림에 몰입할 때 그림을 통해 작가와 만날 수 있고 그림이 걸어오는 말을 들을 수 있는데, <니키 드 생팔展>의 작품들에 직접 다가가니 니키의 아픔과 고뇌, 분노, 상처, 울분과 설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동시에 밀려들어와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났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을 때도 남아있던 아픔은 그대로 작품 속의 한 단면으로 반영돼 있다. 천재적인 미술 재능을 지닌 니키는 죽을 때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아픔을 예술로 승화했지만, 그럴 재능도 없고 그렇다고 주변의 보호와 위로도 못 받는 상처받은 사람들은 본인의 마음이 정말 죽을 만큼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지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떠올라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은 아픔이 전달된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인데, <니키 드 생팔展>을 관람할 때 니키 드 생팔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마음에 초점을 맞추기를 추천한다. 그녀의 삶을 먼저 접한 후 작품에서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이왕 미술관을 찾을 것이면 예습하지 말고 오디오가이드도 듣지 말고 작품 자체로 그녀의 마음과 대화하기를 추천한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먼저 관람한 후 오디오가이드를 작동하게 하면 더욱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스웨덴 TV 프로그램을 위한 사격회화, 목판에 페인트, 석고 그리고 철망, 195×159×10cm, 1961.05.14.’
‘스웨덴 TV 프로그램을 위한 사격회화, 목판에 페인트, 석고 그리고 철망, 195×159×10cm, 1961.05.14.’은 <니키 드 생팔展>의 ‘Ⅰ. 개인적 상처와 치유’ 입구에 처음으로 전시돼 있는 작품이다.
![‘스웨덴 TV 프로그램을 위한 사격회화, 목판에 페인트, 석고 그리고 철망, 195×159×10cm, 1961.05.14.’. 사진=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http://img.etnews.com/news/article/2018/06/30/cms_temp_article_30200819590567.jpg)
그림을 본 순간 왜 ‘개인적 상처와 치유’라고 했는지 느껴지는 작품이다. 보는 순간 먹먹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공감을 하게 되는데, 계속 보고 있으면 처음의 답답함과 가슴 먹먹함이 어느새 풀리기 시작한다.
<사격회화 shooting painting>의 전형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비닐, 캔, 못 등이 박혀 있고, 철사와 금속재료도 노출돼 있다. 흘러내리도록 표현된 물감은 마치 피가 흐르는 것처럼 아픔으로 전달된다.
필자는 정식 프레스콜 이전에 조명이 채 갖춰지지 않았을 때 이 작품을 만났는데,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작품을 느끼게 만들었다. 니키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면서, 그녀가 어떤 내면을 가졌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가이드의 역할을 한 작품이다.
◇ ‘괴물의 마음, 목판에 페인트, 석고와 다양한 오브제(울, 철망 등), 130×195×25cm, 1962’
‘괴물의 마음, 목판에 페인트, 석고와 다양한 오브제(울, 철망 등), 130×195×25cm, 1962’은 전체적으로 멀리서 보면 하얀색 하트 모양의 입체적이며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렇지만 가까이에 다가가면 힘들고 작고 사소한 여러 가지 요소들로 구성돼 있다는 반전이 있다.
![‘괴물의 마음, 목판에 페인트, 석고와 다양한 오브제(울, 철망 등), 130×195×25cm, 1962’. 사진=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http://img.etnews.com/news/article/2018/06/30/cms_temp_article_30200839761395.jpg)
‘괴물의 마음’이라는 제목도 인상적인데, 사랑을 만드는 작은 요소들은 악마적 정서를 가진 것일 수도 있고, 악마적 정서도 통합하면 사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큰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안에는 다른 면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니키에게는 사랑의 마음과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는 괴물적 분노가 공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동전의 앞뒷면처럼 바뀌는 게 아니라 괴물적 요소도 큰 사랑으로 승화할 수 있고, 큰 사랑도 나의 분노와 울분에 의해 괴물적 본능으로 분해될 수 있다고 표현한 점이 주목된다.
만약 미술로 자신의 울분과 슬픔, 설움, 분노를 표출해 승화하지 못했더라면 니키는 더 힘든 삶을 살았을 수도 있고, 위험한 인물이 됐을 수도 있었겠다고 추정할 수 있다.
결국, 그녀의 예술적 재능이 그녀를 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니키의 작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은 관객에게는,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마 니키도 그런 말을 할 것 같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괴물의 마음’처럼 부분부분, 순간순간은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하는 사람도, 더 큰 자기 자신 안에서 하얗고 입체적이며 멋있는 사랑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가정과 상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샘의 나나(백색의 춤추는 나나), 폴리에스터에 래커 페인트, 금속 골조, 100×147×56cm, 1971/1992’
‘샘의 나나(백색의 춤추는 나나), 폴리에스터에 래커 페인트, 금속 골조, 100×147×56cm, 1971/1992’는 ‘세상의 모든 ‘나나(Nana)’를 위한 외침’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샘의 나나(백색의 춤추는 나나), 폴리에스터에 래커 페인트, 금속 골조, 100×147×56cm, 1971/1992’. 사진=예술의전당 제공](http://img.etnews.com/news/article/2018/06/30/cms_temp_article_30200904981458.jpg)
사진으로 볼 때와는 달리 한가람미술관을 직접 방문해서 관람하면 하나의 축으로 무게중심을 잡아 공간에 띄워 설치했다는 점이 신기하게 보이는 작품이다. 앞모습을 봤을 때는 임신을 해 뚱뚱해진 모습이 전체적인 정서를 표현하는데, 뒷모습은 더 여성적이고 사랑스럽게 표현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모습은 어딘가 위축됐지만 당당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데, 뒷모습은 그냥 당당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직접 관람한다면 관람 방향과 높이에 변화를 줘 다양한 시야를 경험하기를 추천한다.
‘샘의 나나(백색의 춤추는 나나)’의 모습을 그냥 보는 것도 좋겠지만, 단 1분 만이라도 멈춰 서서 나나에게 감정이입한다면,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나가 하는 이야기, 니키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