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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국립오페라단 ‘마농’(3)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의 대립과 갈등

발행일 : 2018-04-07 00:25:45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을 국립오페라단 <마농(Manon)>에 적용한 두 번째 시간으로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을 기준으로 살펴본다.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에서 언급했던 개념이 연결될 것이며,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 개념 또한 같은 대상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될 것이다.

<마농>에서 분열성 양태 모델은 마농(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 손지혜 분)보다는 데 그리외 기사(이즈마엘 요르디, 국윤종 분)(이하 데 그리외)에게 더욱 잘 적용이 된다. 마농과 헤어지면서 완벽했던 관계가 깨진 것으로 받아들인 데 그리외의 상처가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로날드 페어베언의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

로날드 페어베언 분열성 양태 모델의 핵심은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이다. 다른 분야의 학문도 그럴 수 있지만 특히 심리학은 같은 용어라도 학자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에게 리비도는 쾌락 추구였다면, 페어베언에게 리비도는 대상 추구라는 점을 중요하다. 용어가 주는 선입견은 잘못된 해석을 내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분열성 양태 모델에서 완전한 고유의 자아는 본래 고유의 대상인 다른 사람과 완전하고 문제없는 관계를 리비도적 연결로 형성한다고 전제한다. 대상과의 완벽한 리비도적 연결이 침해받을 경우, 자아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아와 대상을 각각 견딜 수 있는 부분과 견딜 수 없는 부분으로 나눈다.

자아는 스스로 견딜 수 있는 부분인 ‘리비도적 자아’와 견디기 힘든 부분인 ‘반리비도적 자아’로 분리되는데, 이는 각각 대상이 되는 타인의 부분인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의 대상’과 연결된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즉, 강하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나의 부분인 ‘리비도적 자아’는 나를 애타고 감질나게 만드는 타인의 부분인 ‘흥분시키는 대상’과 연결된다. 의존적인 나에 대한 혐오와 거부 또한 같이 형성되는데 나의 부분인 ‘반리비도적 자아’가 돼 상대방을 ‘거부의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면 이때 사용되는 리비도는 쾌락 추구가 아닌 대상 추구이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나와 리비도적 자아, 반리비도적 자아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고, 상대방과 흥분시키는 대상, 거부의 대상이 모두 다른 사람인지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인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는 모두 나이자, 내 안에 있는 나의 일부분이다.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의 대상 역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 사람 내면에 있는 다른 면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원래의 자아와 대상이 나눠진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같은 결국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인 것이다.

◇ 마농이 데 그리외와 맺었던 초반의 리비도적 연결을 훼손한 이유

<마농>은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가사와 리듬이 주목되는 작품인데, 초반 주인공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제2막에서 자신 때문에 데 그리외가 죽을 수도 있다고 느낀 마농은 데 그리외와 같이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아름다움의 여왕이 되겠다고 외치면서도 나약하고 무기력하다고 말하는 마농은 자존감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 어린 나이이기도 하지만 자아는 강한데 자아를 채워줄 알맹이가 부족한 마농은 데 그리외를 지키고 보호할 수 없었고, 리비도적 연결이 훼손된 것을 데 그리외는 버림받았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제3막 무도회장에서 마농은 스스로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느낀다. 젊음을 마음껏 쓰겠다고 말하면서도 그리외가 자신을 잊었는지 궁금하다. 마음의 한 편에는 심리적으로 데 그리외에게 의존하는 리비도적 자아가 있으면서도, 데 그리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나도 데 그리외를 좋아하지 않겠다는 반리비도적 자아를 숨기도 있는 것이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데 그리외의 지인을 만났을 때 직접적으로 묻지 않고, 마농이 자신의 친구인 것처럼 해서 자신에 대한 데 그리외의 마음을 마농은 묻는데, 리비도적 자아를 드러내기보다는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언제든 반리비도적 자아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농에게 애정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자신감이 부족해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는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진다. 마농의 무의식은 아직도 데 그리외를 사랑하면서도 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오면서 이제는 데 그리외가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마농에 대해 반리비도적 자아가 주된 정서인 데 그리외

<마농>에서 마농의 사촌 오빠 레스코 역을 맡은 바리톤 공병우는, 마농은 삶과 자기 자신에게 중독된 인물이고, 데 그리외는 사랑에 중독된 인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마농에게는 삶과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데 그리외와 헤어진 후에도 데 그리외를 그리워해도 마음의 상처를 상대적으로 작게 받을 수 있는데, 사랑이 가장 중요한 데 그리외는 마농과 헤어진 것을 결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데 그리외는 냉정하게 마음을 다스린 것처럼 보인다. 저 정도로 견디는 것을 보면 정말 좋아했던 것 맞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농을 정말 사랑했던 데 그리외는 아직도 마농을 잊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했을 수 있다.

마농이 적극적으로 데 그리외를 떠나간 것은 아니지만, 헤어짐의 시간을 마농은 알고 있었고 데 그리외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에 전혀 마음의 준비가 없이 데 그리외가 받은 충격은 무척 컸을 것이다. 이때 데 그리외의 의식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이 선택한 것이라는 점은, 데 그리외가 헤어짐을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데 그리외는 마농에 대해 반리도적 자아를 주된 정서로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마농과 다시 만나고 나서도 마농을 믿지 못한다고 여러 차례 표현한다. 마농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표현한 것이 아니라, 믿지 못한다고 직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농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리비도적 자아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반리비도적 자아를 부각하는 것이다. 완벽했던 리비도적 관계가 훼손됐던 것이 데 그리외에게는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제4막에서는 마농을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데 그리외의 양가감정이 드러난다. 양가감정은 같은 대상에 대해 서로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정반대의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뜻한다.

마농과 다시 만난 후에도 리비도적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의 대립과 갈등이 데 그리외에게 계속됐다는 점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채 상황만 바뀌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만든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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