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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전쟁터의 소풍’ 디테일한 표정연기와 감정 조절을 보여준 박시내

발행일 : 2018-03-16 10:08:11

창작공동체 아르케가 만든 ‘전쟁터의 소풍’이 3월 15일부터 4월 1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 중이다. 페르난도 아라발 원작, 김승철 연출로 2018 창작공동체 아르케 10주년 기념공연 첫 번째 작품이다.

생명이 위태로운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부조리한 사회현상에 대해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희화해서 보여주는 작품인데, 역사를 통해 반복 재생되는 다양한 형태의 전쟁에 어떤 자비도 있을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제작 의도가 담겨 있다.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 ‘전쟁터’와 ‘소풍’, 이질적인 두 단어가 만드는 정서에 대한 호기심

‘전쟁터의 소풍’에서 ‘전쟁터’와 ‘소풍’의 이질적인 두 단어는 어떤 이야기와 정서를 만들지 공연 시작 전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폭격 소리에 놀라는 자뽀(김혜은 분)의 두려움과 트라우마는 소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는데, 그 시간에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칼(박시내 분)의 모습은 확연한 대비를 보여준다.

극 초반에는 자뽀와 칼이 2인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만드는데, 여러 명이 관계를 이루기도 하지만 두 명씩 짝을 이룬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자뽀와 칼, 자뽀와 제뽀(유성준 분), 떼방부인(조은경 분)과 떼빵씨(이형주 분), 위생병1(김관장 분)과 위생병2(정다정 분)는 각각의 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우스꽝스럽게 등장하는 각각의 남녀는 관객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다. 전쟁의 위험을 무시하는 부모, 전쟁에서 희생자를 발견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는 위생병들의 모습은 부조리와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전쟁은 나를 흥분하게 만들지.”라고 말하는 데빵씨는 시대에 걸맞지 않게 기마전을 계속 들먹이는데, 허세작렬한 아버지의 모습은 부조리극의 소동극 같은 느낌을 만들기도 한다.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음악에 심취된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표현한 것은 영화, 드라마와 같은 영상 예술의 묘미를 차용한 재미를 준다. 모순된 상황이 주는 재미와 웃음은 이어지는데, 정말 군인다운 게 뭘까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고, 전쟁에서 예의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인과관계의 모순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과 상황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관객은 재미있다고 느껴서 웃을 수도 있고, 어이없다고 생각해서 웃을 수도 있다. 전쟁에 대한 해학과 조소는 극 전반에 펼쳐지는데, 실제 총칼을 든 전쟁 현장에서 수많은 다른 삶 속의 전쟁 이야기를 같이 전개된다. 이 또한 그 상황에서 인간의 태도에 대한 희화와 조소일 수도 있다.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 관객석에서 뒤돌아 앉은 시간에도 지속적인 표정연기를 보여준 박시내

‘전쟁터의 소풍’에서 칼 역의 박시내는 눈에 검은 칠을 하고 등장한다. 가면을 쓴 것 같기도 하고, 가면을 쓴 분장을 한 것 같기도 한데, 마임 같은 움직임은 어색하게 생각될 수도 있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 움직임 속에서 박시내의 표정연기는 압권인데, 눈빛을 숨기기도 하고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올리고 눈앞의 물체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런데 박시내가 집중해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는 무대 장치나 배경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알기는 어렵다.

한 곳을 집중해 바라보던 박시내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다. 슬프지 않은 눈이었는데 어느새 무척 슬픈 눈이 된다. 몰입해서 슬픔으로 훅 들어가는 것도 놀라운데, 더욱 놀라운 점은 눈물이 나오기 직전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 거기에 멈추게 만들었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겉으로 우는 대신에 속으로 흐느껴 울고 있는 것이다.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실제로 감정 표현을 억제당하고 감정을 숨기는 것이 미덕이자 지혜로 교육받은 많은 사람들은 울컥한 감정이 생겨 눈에 눈물이 맺혀도 시원하게 울지 않고 눈물이 맺혔다는 것을 감추는 경향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시내의 감정 조절은 충분히 개연성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연장은 대체로 어두웠고 박시내는 눈 주위를 검게 분장했기 때문에 집중해서 따라가지 않으면 그런 감정선의 디테일한 변화를 알아채기 힘들 수 있다. 박시내는 관객이 명확하게 인지하든 아니든 최선을 다해 역할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눈물이 맺힌 채 살짝 웃는 모습과 함께 놀라는 모습을 입모양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박시내의 표정연기는 원작의 설정인지, 연출의 디렉팅인지, 아니면 배우 자신의 해석력인지 무척 궁금하다.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전쟁터의 소풍’ 공연사진. 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

박시내는 관객석에서 뒤돌아 앉아 관객과 같은 방향에서 무대의 다른 배우들을 바라볼 때도 표정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예 관객 모드로 관람하기도 했고, 무대에 비스듬하게 드러눕기까지 해 시청자 모드로 들어가기도 했다.

박시내가 연기한 칼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뽀의 그림자? 분신? 아바타? 아코디언 연주도 잘하고 시를 읽어주는 친구라고 자뽀는 칼에 대해 말한다. 박시내와 칼 모두 그냥 보면 잘 보이지 않고 집중해서 보면 무척 잘 보인다. 소극장이기 때문에 어떤 자리든 무대에서 가깝지만 어두운 장면에서도 박시내의 디테일한 표정연기와 감정 표현을 공유하기에는 앞자리가 훨씬 유리하다는 것에 유의해, 관객은 좌석을 선택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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