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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2) 팥죽색 양복에 겨자색 양말, 만화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사나이 캐릭터

발행일 : 2018-02-17 18:40:19

2월 6일부터 4월 15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 중인 ‘홀연했던 사나이’는 두번째생각 제작, 김태형 연출, 오세혁 작/작사, 다미로 작곡/음악감독이 만든 코미디 뮤지컬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각각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사나이(정민, 박민성, 오종혁 분)는 등장 자체부터 퇴장까지 정말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다방에서 커피, 김치, 라면을 공짜로 얻어먹으려는 단순한 소시민적 사기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작가, 심리상담가, 모티베이터, 꿈을 주는 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군가인가보다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받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생각하게 만든다.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 팥죽색 양복에 겨자색 양말, 만화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캐릭터, 사나이!

‘홀연했던 사나이’에서 공연 초반부터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히 사나이 캐릭터이다. 팥죽색 양복에 겨자색 양말을 착용하고 인상적으로 무대에 오른 사나이는, 만화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캐릭터처럼 여겨진다.

흰색 모자와 함께 팥죽색 양복, 겨자색 양말은 정말 안 어울릴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공연이 진행되면서 정말 사나이 캐릭터를 잘 표현한 의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있어 보이지만 뭔가 어색하고, 부조화스러운 면을 찾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임팩트와 매력을 가지고 있다.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사나이를 허세작렬한 거짓말쟁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극 내내 호기롭게 기세롭게 무대를 채우던 힘차고 밝은 에너지는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인물이자 작가의 분신이라고 볼 수도 있다.

픽션(Fiction)을 개연성 있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거짓말을 재미있게 꾸며낸 이야기라고 정의한다면, ‘홀연했던 사나이’에서 사나이는 정말 픽션에 딱 적합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 사나이는 사기꾼이 아니라 작가, 심리상담가, 모티베이터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시나리오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가 될 수 있는데, 여기서 다른 사람이란 특정한 개인을 지칭할 수도 있지만 등장인물의 한 명으로 보편화된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제작 과정으로 들어가면 연출, 감독, 프로듀서와 조율하게 되지만, 아직 시나리오 단계일 때 작가는 작가 마음대로 세상을 만들고 등장인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완성 못 할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고, 완벽한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는데, ‘홀연했던 사나이’의 사나이는 거짓의 대명사가 아닌 고뇌하는 작가의 단면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사람들은 언젠가 그 꿈에서 깰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꿈을 꾸고 싶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사나이는 말한다. 다른 사람의 내면을 파악하고 있는 사나이는 심리상담가의 역할, 모티베이터의 역할, 꿈을 주는 사람의 역할 또한 하고 있다.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 사나이는 샛별 다방에 있는 사람들의 자기대상이다

사나이는 샛별 다방에 있는 사람들의 ‘자기대상(self object)’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대상’은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해 자기심리학을 발전시킨,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이 정립한 개념이다.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와 연결된 외적 대상이 필요하고, 그 대상들과의 지속적인 자기대상 경험 속에서 자기가 강화되고 유지된다고 코헛은 봤다. 즉, ‘자기대상’은 ‘자기의 일부로 경험되는 대상’을 의미한다.

살면서 자기를 비춰 확인하게 되는 모든 것이 자기대상이 된다. 만족감과 자존감을 스스로 얻지 못하고 자기대상을 꾸준히 찾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통해 비친 나의 모습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과 안전감을 얻을 때 보호받고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홀연했던 사나이’에서 사나이는 다른 나를 꿈꿀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다. 진정성도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디테일한 관찰력이 있다, 여자의 애티튜드를 지켜본 사나이는 김꽃님(백은혜, 하현지 분)은 컵에 잔을 받쳐서 나오고, 홍마담(임진아, 임강희 분)은 엽차에 에이스 크래커 3개를 같이 가지고 나온다는 것을 말하며 의미를 부여해 김꽃님과 홍마담의 자존감을 높인다.

사나이는 디테일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사나이를 믿어도 되게 해주고, 사나이를 믿고 싶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대상이 된다는 점은 사나이 캐릭터를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 쌍화차와 화염병을 연결하는 재치, 관점의 전환을 통한 본질에 대한 탐구

‘홀연했던 사나이’에서 쌍화차와 화염병을 연결하는 재치는 무척 흥미롭다. 관점의 전환을 통해 아이러니한 관계 속에서 공통점을 찾는 작가의 생각과 능력은 놀랍다. 해학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비유를 통해 전달하는 점은 무척 똑똑한 방법이다.

이 작품은 1%의 실속만 있으면 허세는 기세가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데, 예술, 낭만, 꿈, 따뜻함과 현실의 차가움이 대비를 이루는 내 영혼의 놀이터 같은 느낌을 준다.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사진. 사진=컴퍼니 연작 제공>

서로 다른 것을 대비해 각각의 특징을 뽑아내면서 동시에 연결고리와 공통점 또한 도출한다는 점은 눈에 띈다. 진실과 이상, 꿈과 좌절, 눈물과 웃음, 꿈과 현실, 따뜻함과 냉혹함, 구질구질한 현실과 영화 같은 순간, 월세 밀린 다방과 레드 카펫 깔린 영화제 등 찾으면 찾을수록 이런 구도는 작품에 많이 배치돼 있다.

사나이는 사기꾼이거나 허세작렬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꿈꾸게 해주는 사람인데,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세상 속 모호한 현실에서 개연성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이라서 그렇다.”라는 관객의 평은 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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