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뱅크 주최, 동서양오페라단 주관, 콘서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가 1월 26일부터 27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공연됐다. 총예술감독 박상열, 음악감독 오지영, 스토리텔러 오유리, 마에스타 오페라 중창단이 함께 만든 작품으로, 한국오페라 70주년 기념, 2018 신년 콘서트 오페라로 펼쳐졌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한국 최초의 오페라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로 알려져 있는데, ‘한(恨)’이 전반적이 정서를 이루고 있어서 스테디셀러로 공연되는 작품이다.

◇ 진입장벽을 낮춘 콘서트 오페라, ‘한(恨)’의 정서에 집중하다
‘라 트라비아타’는 화려함 속에 녹아 있는 ‘한(恨)’의 정서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다. 1849년대 또는 1799년대, 그렇지 않다면 제작감독이 설정하는 시기의 파리가 무대인 이 오페라에서 우리나라의 고유 정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이번에 공연된 형식은 진입장벽을 낮춘 콘서트 오페라인데, 정통 오페라 의상을 입고, 아리아와 연기가 모두 펼쳐졌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대신 오지영의 피아노 연주로 진행됐고, 풀 버전의 공연에서 핵심 인물들의 이야기로 축약돼 120분 동안 공연됐다.

콘서트 오페라는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데 좀 더 손쉬울 수 있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원작의 연극 공연 같은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다소 생략된 채로 비올레타(소프라노 홍은지, 김신혜 분), 알프레도(테너 김기선, 김동원 분), 제르몽(바리톤 김영주, 송기창 분)의 감성에 집중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 스위트 하지만 철없는 이미지의 알프레도를 잘 표현한 김동원의 목소리와 노래
‘라 트라비아타’에서 맑은 목소리의 테너 김동원은 부드러우면서도 시원시원하게 아리아 소화했다. 이날 공연은 콘서트홀에서의 공연이라 오케스트라 피트가 없어 무대가 가깝기 때문에 김동원의 밝은 에너지는 더욱 생생하게 관객석에 전달됐다.
스위트 하지만 철없는 이미지의 알프레도를 잘 표현한 김동원의 목소리와 노래는 인상적이었다. 알프레도가 지나치게 여유가 있거나 관조적이면 관객의 감정이입을 방해할 수 있는데, 김동원은 딱 알프레도처럼 보여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 가창력과 연기력이 모두 뛰어난 김신혜
목소리의 울림이 좋은 소프라노 김신혜는, 독창의 아리아를 부를 때 같은 곡 내에서 웃기도 하고, 서글픈 표정을 짓기도 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표정 연기를 하기도 했다.
가창력과 연기력이 모두 뒷받침된 소프라노가 만든 무대는 감동적이었다. 김동원을 포옹하면서 아리아를 부를 때의 표정 연기는 슬픔과 단호함, 아쉬움의 정서를 모두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김신혜는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표정과 몸짓의 디테일에 계속 변화를 줬는데, 표독스러운 역할을 맡아도 카리스마를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됐다.

◇ 음악감독 오지영의 겸손하고 똑똑한 선택, 더욱 현대적으로 해석한 제르몽과 안니나 캐릭터
‘라 트라비아타’는 공연 시작부터 피아노 선율만으로 느끼는 서곡으로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한 대의 피아노는 오케스트라 전체 음악을 소화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렇지만 지나치게 질주하지는 않고, 반주의 느낌으로 성악가의 아리아를 뒷받침했다는 점이 주목됐다. 음악감독인 피아니스트 오지영의 겸손하고 똑똑한 선택이라고 여겨진다.
소프라노 이빛나는 안니나를 다소 성깔 있는 캐릭터로 표현했다. 사전 지식이 없었다면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플로라, 듀폴 남작 등 주인공이 아니면서 외부에서 갈등을 격발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이번 프로덕션에는 빠져 있는데, 이빛나는 그런 긴장감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이번 공연은 만약 풀 버전의 공연을 본 적이 없는 관객이라면 흐름에 생략과 점핑이 있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장면을 연결했다는 점 또한 돋보였는데, 제르몽 또한 아주 나이 많은 연령대의 이미지가 아닌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세대의 아버지라는 느낌을 송기창은 전달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