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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라벨라오페라단 ‘돈 지오반니’ 한국적 무대와 배경의 변화, 원작의 정서를 제대로 살리고 있나?

발행일 : 2017-11-18 02:40:59

라벨라오페라단 창단 10주년 기념 오페라 ‘돈 지오반니(Don Giovanni)’가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이강호 예술총감독, 정선영 연출, 양진모 지휘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메트오페라합창단이 함께 했다.

이번 프로덕션은 무대와 배경, 의상을 한국적으로 변형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작곡가 모차르트, 극작가 로렌초의 천재 악동이 만들어낸 정서를 훼손시키지는 않았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아리아를 비롯한 음악 자체를 대폭 편곡하는 것이 아니라면, 외형에 변화를 주더라도 원작이 가진 기본적인 정서의 핵심을 지켜야 작품의 완성도와 감동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 커다란 기와 구조물! 시각적으로는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원작의 정서를 훼손하는 무대 설정

‘돈 지오반니’의 막이 오르면 조각조각의 기와들이 얽히고설켜 단단한 막을 형성하고 있는 커다란 기와 구조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제작진은 이 기와 구조물은 구태와 진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참신한 무대 장치는 보는 순간 시각적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오페라 피트의 한 쪽 끝을 가로질러 연결된 무대는, 오페라극장 1층 A구역 1열 관객들에게 마치 무대와 연결된 자리에 앉아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돈 지오반니’의 기와 구조물은 작품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알 수 있게 만드는데, 와이어에 반사된 조명은 기와 구조물이 주는 정서를 분산시킨다.

등장인물이 기와 구조물 위에서 움직이는 게 편하지 않게 보이는데, 제작진의 의도와는 달리 돈 지오반니(바리톤 김종표, 베이스 바리톤 우경식 분) 또한 기와 구조물 위에서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기와 구조물로 인해 무대 위 동선에 큰 제약이 가해지는데, 이는 모차르트의 정서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기와를 들고 있는 것이 파티를 즐기는 모습으로 표현한 장면에서 파티의 화려함을 찾을 수는 없었고, 이 또한 돈 지오반니의 정서와 매치되지 않는다. 기와를 들고 있는 것과 파티를 즐기는 모습 사이에는 상징의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감정이입과 몰입을 방해하는 무리수로 여겨진다.

흥미로운 점은 오페라극장 3층, 4층에서 봤을 때는 기와 구조물이라기보다는 음산한 묘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기와가 모두 연결돼 있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제1막의 초반부터 돈나 안나(소프라노 강혜명, 박하나 분)의 아버지 기사장의 죽음으로 인해, 무덤의 이미지가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는 스토리텔링의 더욱 섬뜩한 느낌이 전달된다.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 너무 어둡게 설정된 무대, 편하게 감정이입하기는 어렵다

‘돈 지오반니’는 전체적으로 조명이 너무 어둡다. 측면 조명은 무대 뒤쪽의 바닥의 기와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무대 뒤쪽은 상대적으로 밝고 무대 앞쪽은 어둡다. 그렇기 때문에 오페라극장 1층에서는 무대 전체가 어둡게 보이고, 3층, 4층에서는 상대적으로 밝게 보이는데, 무대 가까운 곳에서는 어둡게 보이고 무대 먼 곳에서는 밝게 보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시각적 친밀도에 의한 감정이입은 방해받을 수밖에 없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영지를 소유한 봉건귀족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매력 있는 외모를 무기로 삼고 있는 돈 지오반니는 순간의 쾌락에 초점을 맞추고, 심판의 시간에도 반성하지 않고 끝까지 당당한 캐릭터이다.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돈 지오반니는 지탄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모차르트가 자신의 모습을 투사한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지속적으로 어두운 무대는 모차르트 음악이 주는 정서, 바람둥이 돈 지오반니의 에너지와도 상충된다.

무대가 너무 어두워 움직임의 디테일이 잘 와닿지 않고, 정서적 전달이 모호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 지오반니는 음침하기보다는 가볍고, 무게감 없고, 즉흥적으로 순간의 쾌락만 추구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무대, 조명 설정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돈 지오반니에게만 현대적 의상을 입혔기 때문에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돈나 엘비라(소프라노 오희진, 김신혜 분)가 1층 BOX석에서 아리아를 부를 때 무늬가 있는 조명으로 인해 얼굴이 조명 속에 가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청각적으로는 훌륭한 아리아는 느끼는 차이를 만들어 오히려 시각적으로는 아쉬움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어두운 조명 속의 감미로운 아리아는 한두 곡 정도는 상상력 유발하지만 지속적으로 어두운 조명은 관객들에게 심리적 답답함을 준다. 조명의 완급 조절, 강약 조절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 성악가에 따라 다른 디테일, 다른 캐스팅의 회차를 모두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다

‘돈 지오반니’는 더블 캐스팅으로 진행되는데,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성악가에 따라 다른 디테일을 보여줘 보는 즐거움의 다양성을 선사한다. 우경식은 무용수 같은 움직임 속에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강렬한 표정 연기를 내포해 더 젊은 돈 지오반니를 표현하고 있고, 김종표를 통해서는 좀 더 무게감 있는 돈 지오반니를 만날 수 있다.

돈 지오반니의 하인 레포렐로 역의 베이스 장성일은 변장을 하지 않은 시간의 레포렐로일 때 더욱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쳐 돈 지오반니의 의상을 입었을 때의 내면의 불편함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돈 지오반니’ 공연사진. 사진=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반면에, 베이스 양석진은 돈 지오반니로 변장한 레포렐로일 때 더욱 살아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양석진의 레포렐로는 거짓일지라도 하인이 아닌 주인일 때를 선호한다는 것을 추측하게 만들었는데, 디테일한 해석의 차이는 관객들에게 받아들이는 다양성의 재미를 선사한다. 귀족 주인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삶을 열망하는 레포렐로의 모습을 장성일과 양석진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돈 지오반니’를 모차르트의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워낙 훌륭한 아리아와 음악이 기본적인 작품의 수준을 유지하게 만들고 있긴 하지만, 무대와 설정을 한국적으로 변화시킬 때 등장인물과 작품의 정서적 일관성을 잘 살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강하게 남는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다 기존의 장점을 많이 잃어버린 점은 매우 안타깝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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