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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갤러리] ‘에셔 특별展’(1) 시간과 공간, 신기하다 → 빨려 들어간다 → 무섭다

발행일 : 2017-07-31 19:52:31

M.C. Escher Foundation 주최, 와이제이커뮤니케이션 주관, 세종문화회관 후원으로 열린 그림의 마술사 ‘에셔 특별展’이 7월 17일부터 10월 1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 2관에서 전시 중이다.

에셔는 철저히 수학적으로 계산된 세밀한 선을 사용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느낌의 작품을 창조해 낸 초현실주의 작가로 유명하다. 공대생인데 예술적 감각이 있는 작가, 철저히 공학적 사고를 하는데 내면에는 예술혼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되는데, 실제로 에셔는 1919년에 Haarlem 건축장식학교에 입학해 잠시 배웠으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담당 교수의 권유로 그래픽 아트에 전념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셔 특별展’은 평면에서 입체로, 입체에서 평면으로 ‘평면-입체’, 반복되는 시간, 순환하는 공간 ‘시간과 공간’, 면을 채우고 있는 조각들 ‘테셀레이션’, 손으로 만든 그래픽 ‘그래픽 디자인’, 작가가 여행에서 본 세상 ‘풍경과 정물’ 섹션으로 나눠 전시되고 있다. 본지는 ‘시간과 공간’, ‘풍경과 정물’ 중 각각 세 작품에 대해 2회에 걸쳐 공유한다.

◇ ‘눈(Eye), 메조틴트, 53x43cm, 1946’

‘눈(Eye), 메조틴트, 53x43cm, 1946’(이하 ‘눈’)은 ‘에셔 특별展’에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작품이다. 첫 느낌은 ‘신기하다’인데, ‘빨려 들어간다’라는 단계를 거쳐 ‘무섭다’라고 느껴지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이 2D에서 3D로 발전하면서, 실사 영화에서는 그냥 찍으면 되는 털 등을 표현할 때 고도의 기술과 노동집약적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눈’에서의 표현의 정교함은 그런 뉘앙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눈(Eye), 메조틴트, 53x43cm, 1946. 사진=와이제이커뮤니케이션 제공 <눈(Eye), 메조틴트, 53x43cm, 1946. 사진=와이제이커뮤니케이션 제공>

‘눈’은 어디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림 전체의 세계, 윗 눈꺼풀과 아랫 눈꺼풀의 세계, 윗 눈꺼풀과 아랫 눈꺼풀에 안쪽 눈까지 같이 바라보는 세계, 검은 눈동자의 세계, 흰자위를 포함한 검은 눈동자의 세계, 눈동자 안쪽에 비친 모습으로 표현된 세계로 나눠 각기 다른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다.

‘눈’에서 눈에 비친 모습을 정교하게 표현한 것은 인상적인데, 눈에 비친 모습은 현실적이면서도 무척 심미적으로 보인다.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는 것과 그 눈에 비친 어떤 모습을 다시 바라보는 것을 모두 표현한 것은 의미 있다.

‘눈’은 가까이 근접해서 보면 표현의 디테일에 감탄하게 되고, 약간 떨어져서 보면 그림이 아닌 심령 장치인 듯하게 보이기도 한다. 주름이 접힌 모습은 외면의 표현인데, 내면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에셔는 꼼꼼한 관찰력, 그 안의 근육까지 꿰뚫어 보는 심미안, 인물의 내면까지 표현한 작가인데, 내면의 경우 물리적 내면과 심리적 내면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

◇ ‘웅덩이(Puddle), 목판화, 63x53cm, 1952’

‘웅덩이(Puddle), 목판화, 63x53cm, 1952’(이하 ‘웅덩이’)는 약간 떨어져서 보면 웅덩이 속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창밖 하늘의 모습을 비스듬하게 누워서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웅덩이(Puddle), 목판화, 63x53cm, 1952. 사진=와이제이커뮤니케이션 제공 <웅덩이(Puddle), 목판화, 63x53cm, 1952. 사진=와이제이커뮤니케이션 제공>

‘웅덩이’를 정면에서 2m 이상 떨어져서 보면, 맑은 영역과 질감이 느껴지는 영역의 공존은 사진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그림 쪽으로 근접할수록 전혀 색다른 느낌을 주는데, 마치 만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면서도 특징을 단순화해 부각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웅덩이’를 관람하는 위치에서 그림의 오른쪽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정적인 느낌을 주는데, 왼쪽 아래에서 대각선 사선 쪽으로 바라보면 내가 있는 곳으로 그림 속 물체들이 미끄러져 내려올 것 같은 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웅덩이’를 정면 가운데에서 바라볼 경우 복합적 감정이 전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셔에 대해 착시의 작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인도 같은 그림으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소스(source)를 제공한 작가라고 볼 수도 있다. 에셔의 작품은 예술작품으로도, 뇌를 자극해 활성화하는 방법으로도, 심리학을 공부하는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 ‘폭포(Waterfall), 석판화, 63x53cm, 1961’

‘폭포(Waterfall), 석판화, 63x53cm, 1961’(이하 ‘폭포’)는 3차원이 아닌 2차원에서 무한 반복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에셔는 도형적 표현 기술을 그의 정신세계와 연결했다고 생각되는데, 앞으로 나아간 것 같은데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모습은 알면서 봐도 신기하다.

폭포(Waterfall), 석판화, 63x53cm, 1961. 사진=와이제이커뮤니케이션 제공 <폭포(Waterfall), 석판화, 63x53cm, 1961. 사진=와이제이커뮤니케이션 제공>

‘폭포’에서 물이 순환하는 공간은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물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가정한다면 신의 영역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사람들과 식물들은 더 낮은 곳에 위치했는데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입체적 공간감과 물이 주는 역동성을 그림 전면에서 느낄 수 있다면, 뒷부분에 상대적으로 흐릿하게 표현된 계단식 구조물과 꽃은 마치 묘지를 연상하게 한다. 만약 묘지로 본다면 이곳은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사후 세계가 공존하는 지역이 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흐릿하게 표현된 뒷부분은 얼핏 보면 바람이 불거나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이미지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착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다양한 해석을 해도 개연성이 있게 느껴지는 매력이 에셔 작품의 특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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