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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1인 2역이 아닌 1인 3역을 소화한 박하나, 스테파니

발행일 : 2017-06-22 20:45:37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인간의 선과 악을 다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기반으로, 지킬 박사의 실험이 실패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 극본가 미타니 코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냥 웃을 수도 있고 진지하게 바라볼 수도 있는 이 작품은 티앤비컴퍼니 제작, 오픈리뷰, 마케팅컴퍼니 아침 주관으로 만들어져 6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되고 있다.

정태영 연출은 가능한 미타니 코키의 정서를 살리려고 의도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기존에 널리 알려진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기대하는 관객들은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 몰입해 들어가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 스스로 만든 이미지에 갇혀 자신의 벽을 깨지 못하는 사람의 자화상

의 무대는 목재로 꾸며졌다. 전형적인 실험실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 고전적인 뉘앙스를 형성해 인간의 이중성을 따뜻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한 발짝만 뛰어넘으면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지만 벽을 깬다는 것은 어렵다는 메시지를 연극은 지속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스스로가 만든 이미지에 갇혀 자신의 벽을 깨지 못 하는 것이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나도 내 진짜 모습을 알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고 극 중에서 등장인물들은 말한다. 그런데,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극 중 인물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내면에 숨겨진 인격은 또 다른 나 자신의 모습이지 유일하게 독점적인 하나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단역배우 빅터(정민, 장지우 분)의 애환도 담고 있는 작품인데, 배우로서의 자존감은 있지만 초짜 배우인 빅터는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한다. 빅터 역을 맡은 배우는, 배우가 배우 역을 연기해야 하는데,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무척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절대 쉽지 않은 역할이 배우 역할이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연구가 성공했다고 위장하기 위해 연구 결과를 조작하며, 언젠가 진짜 약을 발명할 것이라는 믿음과 자신감에 시간을 끌며 실험 실패를 알리지 않는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의 지킬 박사(윤서현, 김진우 분)는, 기존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지킬 박사와는 다른 성향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지킬 박사는 부모가 정한 약속으로 약혼녀가 된 이브 댄버스(박하나, 스테파니 분)가 자신에게 관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작품에서 지킬 박사는 현재를 불안하게 살며 항상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 여자가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

지킬 박사의 행동을 보고 “어쩜 저렇게 사람 마음을 모르는가?”라고 지킬 박사의 조수인 풀(박영수, 장태성)은 말한다. 지킬 박사는 다른 사람 마음을 잘 모르는 사람이고, 특히 여자 마음은 더더욱 모르는 사람이다.

이브가 하이드의 모습에 남자다움을 느끼는 것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나와 다른 스타일의 이성에게 끌린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는데, 서로 자신과 다른 성향의 이성을 만나고 싶어 하기도 한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하이드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지킬 박사의 요청에 의해 빅터는 하이드로 변장했다. 하이드는 지킬 박사의 다른 모습인가? 아니면 빅터의 다른 모습인가? 하이드가 이브에게 인기가 좋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이드를 꺼내고 싶다는 생각에 아마도 많은 남자 사람들은 동의할 것이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여자가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표면, 내면, 타이틀 중 무엇일까? 부드러움이냐, 터프함이냐? 편안한 안정감이냐, 흥분되는 도발이냐? “거침 속에 약간의 부드러움을 끼워 넣어야 한다.”라는 극 중 표현은 비중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서로 다른 매력을 조합할 때 어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 무대에서 억압된 내면을 발산하고 내려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박하나와 스테파니

자신에게 음란한 말을 퍼부어 달라고 부탁하는 박하나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플라세보효과, 용기를 주는 행동, 자기 암시, 자기 최면, 이브 내면에 잠들어있던 사악한 내면을 박하나는 수줍은 듯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이브는 와인을 입으로 먹여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청초하고 우아한 이브, 천박한 하이디의 양면을 가진 인물은 남자들에게 일종의 판타지를 심어줄 수도 있는 인물이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 심리적으로 갇혀있는 지킬 박사와 빅터, 그리고 하이드는 억압된 내면을 폭발하고 발산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박하나 외에도 이브 역을 맡은 스테파니는 내면을 제대로 발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박하나와 스테파니는 표면적으로는 1인 2역을 소화하지만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면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1인 3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브와 하이디,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하이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브까지 소화하게 되는데, 이전의 이브와 하이디를 경험한 이브가 다르다는 점은 흥미롭다.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사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이는 어떤 행동이나 경험을 한 후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려고 해도 벌써 변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는 점이 상징적인 의미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박하나는 자신은 평소 이브에 가깝고, 스테파니는 평소 하이디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고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박하나는 하이디를 어떻게 소화할지, 스테파니는 이브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따라 캐릭터의 완성도가 결정된다고 예상할 수 있다. 공연 기간 후반부가 됐을 때 박하나와 스테파니의 연기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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