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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누가 더 영웅인가?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 ‘아이, 아이, 아이’

발행일 : 2017-03-06 15:28:47

맨씨어터의 ‘아이, 아이, 아이’가 3월 1일부터 12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 중이다. 극단/소극장 산울림, 아트판 주최/주관으로 진행되는 2017 산울림 고전극장 ‘그리스고전, 연극으로 읽다’의 세 번째 공연으로 아이아스 원작, 소포클레스 작, 한상웅 연출의 작품이다.

제목의 “아이”는 그리스어로 ‘슬픔으로 탄식하여 울부짖는 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맨씨어터는 밝힌 바 있다. 아이아스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후회해 괴로움에 울부짖으며 자살을 결심할 때 “아이, 아이, 아이”라고 탄식하며 울부짖는다.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 관객은 누구에게 감정이입할 것인가?

‘아이, 아이, 아이’는 크게 두 명의 대립으로 진행된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가멤논(구도균 분)의 장수들 중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뛰어난 무장인 아이아스(김태근 분)와 중요할 때 지략을 발휘한 오디세우스(박기덕 분)은, 아킬레우스 사후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갑옷 등 유품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한다.

행동파 아이아스와 사고파 오디세우스는 둘 다 장점을 가지고 있다. 관객들은 각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에 나뉘어 감정이입할 수 있다. 둘 중 한 인물에 감정이입할 경우 극이 진행되면서 그와 같이 흥분할 수도 있다.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아이, 아이, 아이’는 초반에 누가 더 영웅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용맹하나 지략이 모자란 아이아스, 지략은 뛰어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앞에 나서지 않는 오디세우스는 우리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두 모습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누가 더 영웅인가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가증스러운 오디세우스와 어리석음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아이아스.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아이, 아이, 아이’는 사건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내면 심리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는 작품이다.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뭐가 좋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보는 관객도 있고, 불호의 이유를 이 작품에서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관객도 있다.

결국 마약에 취한 아이아스, 계략을 꾸민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 모두 감정이입한 관객들을 아프게 만들 수 있다. 남성 우월주의와 가진 자의 우월주의로 인해 테크메사(권귀빈 분)와 코러스(이은 분)에 마음을 준 관객은 더욱 불편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 광기를 발산한 김태근과 박기덕

‘아이, 아이, 아이’에서 아이아스 역의 김태근은 화를 내는 장면에서 책상을 그냥 치는 것이 아니라 책상 위 모든 소품이 떨어질 정도로 강력하게 내리쳤다. 김태근을 보면서 아이아스의 광기를 연기하는 것인지, 본인의 광기를 아이아스의 이름으로 표현한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몰입된 강렬한 연기에 감탄하게 됐다.

만약 김태근 내면의 광기가 ‘아이, 아이, 아이’에서 발산된 것이라면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치유가 돼 카타르시스를 남길 것이고, 자신의 내면에 없는 광기를 뛰어난 연기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면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을 수도 있다.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아이, 아이, 아이’에서 아이아스가 광기를 발산하는 과정은 어쩌면 광기가 축적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 보이는데, 저 순간에 내 눈앞에 아이아스가 있다면 정말 무서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디세우스는 차분한 모습으로 아이아스와는 대비된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 아이, 아이’에서 박기덕은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광기를 이성으로 억누르고 감추고 제어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아이, 아이, 아이’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아이아스의 무력 앞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아이아스를 더욱 도발하게 만드는 담대함을 ‘아이, 아이, 아이’의 오디세우스는 보여줬는데, 박기덕 역시 만만치 않은 광기를 전달했다.

김태근과 박기덕이 펼친 광기의 질주는 이처럼 몰입된 연극을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기도 하고, 불편하고 정신없다고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아이, 아이, 아이’가 디테일과 연결, 그리고 배우들 간의 톤을 조율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이아스의 죽음 때 분홍색 꽃송이가 무대를 뒤덮었다. 혐오스럽고 거북하게 흐를 수도 있는 무대를 완충하는 역할을 했다. 초연 공연인 ‘아이, 아이, 아이’는 막공인 12일까지 지속적으로 디테일을 업그레이드한다면 호불호를 벗어나 전체적으로 하나 된 호응을 받으며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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