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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1) 잔혹동화에서 가족 오페라까지

발행일 : 2016-12-27 16:42:12

성남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가족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이 12월 21일부터 25일까지 경기 성남시 소재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공연됐다. 이번 공연은 이의주 연출, 박인욱 지휘 하에 코리안 피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했고, 성남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함께 했다.

국내 오페라 최초 홀로그램 효과를 통해 색다른 재미를 부여한 이번 공연은 무대 디자인과 장치 등에 있어서 역대급 스케일을 자랑했다. 하지만 오페라 본연과 공연의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본지는 오페라 ‘헨젤과 그레델’이 남긴 몇 가지 숙제에 대해 2회에 걸쳐 논한다.

‘헨젤과 그레텔’ 공연사진.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공연사진.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 훈훈한 가족 오페라로 알았던 아이들이 받을 상처는?

원작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은 독일 지방의 민담과 민요를 책으로 엮은 그림(Grimm) 형제의 동화를 기초로 만든 1845년 루트비히 베히슈타인(Ludwig Bechstein)의 작품 ‘헨젤과 그레텔’을 기본 이야기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 작곡가 엥겔베르트 훔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의 누이동생 아델하이트 베테(Adelheid Wette)가 대본을 작성한 것이 현재의 모습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원작 ‘헨젤과 그레텔’은 우리나라에 전해져오는 것처럼 미화된 버전이 아닌 ‘잔혹동화’에 가까운 이야기다. 물론 오페라화를 거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많이 바뀌다 보니 주목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헨젤과 그레텔’ 공연사진.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공연사진.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여기에 이번 가족뮤지컬 ‘헨젤과 그레텔’은 그레텔(소프라노 배보람, 이예지 분)의 오빠인 헨젤(메조소프라노 류현수, 김주희 분)을 여성 성악가인 메조소프라노가 맡고, 마녀(테너 김동섭, 박용규 분)는 남성 성악가인 테너가 맡는 등 원작 배격의 정서까지 뒤바꾸며 순화를 시키면서 어린이들의 정서에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원작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던 어린 관객들이 현재 성인들처럼 ‘헨젤과 그레텔’이 사실은 잔혹동화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의 상처는 매우 걱정스럽다.

잔혹한 것을 처음부터 경험했을 때보다, 나중에 잔혹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서 오는 절망감이나 배신감 등의 상처는 상상외로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잔혹동화라는 원작이 가진 잔혹함을 들추지 않고 오페라를 구성한 이번 공연만 보더라도, 동심과 교육적 효과 면에서는 ‘독이 든 성배’와 같은 느낌이다.

‘헨젤과 그레텔’ 공연사진.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 공연사진.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공연 일면의 내용으로만 봐도 ‘헨젤과 그레텔’은 어른들에게 역설적인 판타지를 심어주기 위한 오페라로는 적합할 수 있지만, 아이들까지 같이 보는 가족 오페라로는 적합하지 않은 작품이다.

내용 중에서 보면 ‘헨젤과 그레텔’이 자신들을 과자로 만들려 했던 마녀를 죽이고 똑같은 방법으로 잔인한 복수를 한다. 이때 어린 관객의 입장에서는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주인공을 과자로 만들려고 한 마녀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통쾌함으로 바뀌는 것은 있을 수 있다.

메조소프라노 류현수(‘헨젤과 그레텔’ 헨젤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메조소프라노 류현수(‘헨젤과 그레텔’ 헨젤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하지만 주체만 바뀌고 행동이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면 아동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나쁜 짓으로 대응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놓고 보면 ‘헨젤과 그레텔’에서 마지막 부분의 “어려운 일 생기면 주님께서 도우시네!”라는 합창 가사는 무척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다. 어쩌면 어린 관객 중에는 ‘헨젤과 그레텔’이 난생 최초로 관람한 오페라였을 수도 있는데, 잔혹동화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의 배신감으로 오페라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지는 않기를 바란다.

메조소프라노 김주희(‘헨젤과 그레텔’ 헨젤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메조소프라노 김주희(‘헨젤과 그레텔’ 헨젤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 가사전달력 저하, 극 이해도와 극적 감동을 오히려 떨어뜨린 우리말 공연

이번 가족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좋은 취지로 아리아와 대사의 우리말화를 시작했다. 이는 내용상의 미화, 생략으로 인해 스토리텔링이 약해진 본래 스토리를 보완해줄 수 있을만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페라인 ‘헨젤과 그레텔’은 기존 동일 주제의 공연보다 가사전달력이 오히려 약해졌다. 먼저 공연 시작과 마무리에서 동화책 넘기는 영상의 글씨는 우리말이 아니었다. 슬라이드 형식으로 만들어진 영상은 선명하지도 않았기에 이미지나 메시지 전달력이 매우 부족했다.

소프라노 배보람(‘헨젤과 그레텔’ 그레텔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소프라노 배보람(‘헨젤과 그레텔’ 그레텔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헨젤과 그레텔’에서 우리말 공연을 추구하면서 오히려 생긴 가사전달력 저하는 극 이해도와 감동을 오히려 떨어뜨렸다. 아리아가 끝나면 박수와 환호가 이어져야 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그런 시간이 별로 없었다. 대신, 아리아마다 박수치고 싶던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관객들은 커튼콜에서 강한 호응을 보내는 매너를 선보였다.

물론 우리말 아리아의 한계를 논하기 이전에, 어떤 나라의 말로 하더라도 자국민조차도 아리아 가사를 처음 듣고 다 알아듣기는 어렵다는 것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특히 소프라노가 고음으로 노래 부를 때는 가사와 내용을 미리 알고 있지 않은 한 듣고 바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소프라노 이예지(‘헨젤과 그레텔’ 그레텔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소프라노 이예지(‘헨젤과 그레텔’ 그레텔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이에 아리아의 우리말화는 앞으로 발전해나가야 할 방향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선례를 남기지 않으면 오페라의 우리말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근거만 남기게 된다는 점이 우려된다.

어머니(메조소프라노 신민정, 최승현 분) 역의 메조소프라노 최승현의 노래는 우리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리아답다는 만족감을 줬다. 그러나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알아들으려고 하면 명쾌하지 않기 때문에 아리아 자체의 극적 감동 저하된다.

메조소프라노 신민정(‘헨젤과 그레텔’ 어머니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메조소프라노 신민정(‘헨젤과 그레텔’ 어머니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아버지(바리톤 김재섭, 왕광열 분) 역 바리톤 왕광열의 우리말 가사전달력은 좋았다. 왕광열 본연의 우리말 아리아 소화 능력이 좋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런 부분이 상대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프라노 이예지는 잔잔한 독창 아리아를 서정적으로 부를 때까지만 해도 가사전달력이 좋았다. 하지만 고음의 아리아와 대화 형식의 레치타티보에서는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메조소프라노 최승현(‘헨젤과 그레텔’ 어머니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메조소프라노 최승현(‘헨젤과 그레텔’ 어머니 역). 사진=성남문화재단 제공>

이번 ‘헨젤과 그레텔’이 우리말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한글자막을 제공한 것은 관객 배려 차원이나 전체적인 공연의 질을 상승시키는 데 있어서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자막이 표시되는 모니터의 크기가 작고, 바닥과 가까운 위치에 설치된 까닭에 관객의 위치나 시력에 따라 불편한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향후에는 관객의 입장을 좀 더 배려한 시설 배치가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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