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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앙상블’ 감정조절 연기를 실감 나게 보여준 예수정, 대사 전달력 좋은 배보람

발행일 : 2019-09-23 18:11:48

극단/소극장 산울림 주최 연극 <앙상블>이 9월 19일부터 10월 20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 중이다. 파비오 마라(Fabio Marra) 원작, 심재찬 연출, 임수현 번역으로, 예수정(이자벨라 역), 유승락(미켈레 역), 배보람(산드라 역), 한은주(클로디아 역)가 출연한다.
 
유럽의 남자 작가가 쓴 이야기인데, 마치 한국의 여자 작가, 그중에서도 엄마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한국적 정서를 가졌다는 점이 놀랍다. 감정조절 연기를 실감 나게 보여준 예수정과 대사 전달력 좋은 배보람의 케미가 돋보이는 공연이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 이탈리아 나폴리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쓴, 한국적 정서를 가진 이야기
 
<앙상블>의 원작자인 파비오 마라는 이탈리아 나폴리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며 연출가이자 배우이다. 그런데 직접 <앙상블>을 관람하면 유럽의 남자 작가가 쓴 작품이 아닌, 한국의 여자 작가, 그중에서도 엄마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한국적 정서를 가졌다는 점이 놀랍다.
 
<앙상블>은 여성 심리에 주목한 작품인데, 제3자의 시야가 아닌 엄마 혹은 딸에게 감정이입한 관객은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연극 초반에는 매우 답답할 수도 있다. 엄마의 애환에 초점을 맞추면 딸이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앙상블>은 사람이 등장하기 전에 목소리가 먼저 등장하며 시작한다. 행동과 사건보다는 말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정서적 암시라고 볼 수 있다. 엄마와 딸의 신경전은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통해 날카롭게 전달된다.
 
딸과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엄마는 아직도 과거 사건으로 앙금이 남아있는데, 뒤끝작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컸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앙상블>에서 딸 산드라는 엄마 이자벨라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폐 기질이 있는 오빠 미켈레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엄마는 거부한다.
 
<앙상블>에서 관객은 누구에게 감정이입하게 될까? 예수정과 배보람은 관객이 엄마인 이자벨라와 딸인 산드라 중 어떤 누구에게 감정이입해도 가능하도록 밀착된 연기를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 감정조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정말 실감 나게 표현한 예수정!
 
<앙상블>에서 예수정은 이자벨라를 한국적 여인으로 소화했다. 유럽의 엄마를 한국의 엄마로 소화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한국 엄마의 이야기인 것처럼 표현했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예수정의 연기를 본다면, <앙상블>은 우리나라 창작극처럼 느껴질 것이다.
 
강렬하고 날카로운 연기를 통해 순간의 존재감을 극대화할 줄 아는 예수정에게는 산드라 캐릭터가 더 잘 어울렸을 수도 있다. 이자벨라는 감정을 절제하고 참을 때가 많은데, 예수정은 이자벨라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감정조절을 하면서 답답했을 수도 있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그런데 절제하는 모습과 그때의 답답함은, 남과는 다른 아들을 가진 실제 엄마의 모습일 수 있다. 예수정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한다. 감정이입한 감정연기에 워낙 뛰어난 예수정이 연극을 하면서 감정이 훅 올라오는 순간에 감정조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엄마들은 실제로 현실에서도 저렇게 감정을 억누르며 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진다.
 
◇ 대사 전달력 좋은 배보람! 다른 배우들이 질주할 수 있게 중심을 잡는다
 
<앙상블>에서 배보람은 대사 전달력이 무척 좋다. 산드라 캐릭터가 갈등의 축을 이룬다면, 배보람은 정서의 축을 이루는 연기를 펼친다. 이자벨라, 미켈레, 클로디아가 각자의 마음에 따라 질주할 수 있도록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드라를 배보람은 멋지게 소화한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산드라는 똑똑하고 능력 있지만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 사람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과는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엄마인 이자벨라와도 그렇고, 면접을 보러 온 클로디아와도 그러하다.
 
만약 배보람의 대사 전달력이 좋지 않았으면 산드라 캐릭터가 살아있게 느껴지기보다는 그냥 답답하기만 한 역할로 보였을 수도 있다. 배보람은 대사를 통해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면서, 내면의 생각과 정서 또한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앙상블’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앙상블>에서 엄마는 딸의 인생에 관심이 없었다고 느껴진다. 딸은 엄마가 자신의 곁에 있은 적이 없었다고 기억하면서 힘들어하는데,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늘 노력했다는 말을 할 때 배보람은 명확한 대사 전달력 속에 명확한 감정 또한 전달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앙상블>에서 세 대의 포르쉐를 통해 극적 긴장을 해소하는 방법은 인상적이다. 서로 이해를 했다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수용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게 보이는데, 현실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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