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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니진스키’(2) 대상관계이론, 하인즈 코헛의 ‘자기대상’ 개념을 도입하면

발행일 : 2019-06-27 07:05:00

5월 28일부터 8월 1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 중인 <니진스키>에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 개념을 적용하면, 디아길레프(김종구, 조성윤, 안재영 분)와 스트라빈스키(임준혁, 홍승안, 신재범 분)가 니진스키(김찬호, 정동화, 정원영 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로몰라(최미소, 임소라 분)와 로몰라의 친구 한스(백두산, 박수현 분) 또한 니진스키의 자기대상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는 있지만, 뮤지컬 속에서 자기대상을 기준으로 볼 때의 관계성을 명확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 하인즈 코헛의 ‘자기대상’
 
심리학 이론 중 하나인 대상관계이론은 개인 내부의 심리 못지않게 대상(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하인즈 코헛은 자기의 내부 세계보다 다른 사람을 포함한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에 더 초점을 뒀다.
 
‘자기대상’은 ‘자기의 일부로 경험되는 대상’을 뜻한다.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와 연결된 외적 대상이 필요하고, 그 대상들과의 지속적인 자기대상 경험 속에서 자기가 강화되고 유지된다. 나의 가치와 의미, 매력은 나를 직접 바라봄보다는 나를 인정하는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자신감과 자존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자기대상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거울 자기대상(mirroring self object), 힘없는 자기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힘이 있고 완벽하고 전능한 이미지와 융합하려고 찾는 이상화 자기대상(idealizing self object), 부모와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는 느끼길 원하는 쌍둥이 자기대상(twinship self object)이다.
 
◇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의 거울 자기대상
 
<니진스키>에서 발레 제작자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의 거울 자기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춤추고 싶지 않아?”라는 말로 니진스키의 욕망을 건드리고 자극하는데, 원래 없던 욕망을 생기게 만든 게 아니라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말하지 않던 욕망을 알아보고 반영해 말해준 것이다.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의 장점을 확실히 알아보고 진심에서 나오는 칭찬과 인정을 한다. 니진스키의 내면이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거울처럼 반영해주고, 그 거울을 통해 니진스키가 본인의 욕망에 직면하게 만든다.
 
<니진스키>를 보면 니진스키는 디아길레프가 인정해줄 때와 인정해주지 않을 때 큰 차이를 보인다. 인정해줄 때는 뛰어난 재능을 몰입해 발휘하지만, 인정해주지 않을 때는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 디아길레프가 니진스키의 거울 자기대상이 돼 주지 않을 때 좌절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저항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현재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니진스키는 보여준다.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 한스는 니진스키의 거울 자기대상! 그렇지만 심리적인 측면이 아니라, 뮤지컬 속에서 이미지적으로만 표현됐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니진스키>에서 니진스키가 춤을 출 때 같은 동작, 혹은 거울로 보는 동작과 같은 대칭된 동작의 춤을 한스가 춘다. 극 초반의 이런 모습은 한스가 니진스키의 강력한 거울 자기대상이 아닐까 상상하게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심리적 측면에서의 자기대상이 아니라 그냥 같은 춤을 추는 모습을 이미지적으로만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다.
 
만약 한스가 니진스키의 거울 자기대상이었으면 니진스키와 한스는 내면적인 공유와 공감을 했을 것인데 <니진스키>에는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작품을 만들 때 ‘자기대상’의 개념을 적용했으면, 스토리텔링의 설정과 디테일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 거울 자기대상은 몇 명 있지만, 이상화 자기대상과 쌍둥이 자기대상은 없었던 니진스키
 
<니진스키>에서 스트라빈스키와 로몰라 또한 니진스키에게 일정 부분 거울 자기대상의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완벽한 거울 자기대상이라기보다는 덜 닦인 거울 자기대상 같은 느낌이 든다. 즉, 스트라빈스키와 로몰라는 니진스키의 진가를 인정하지만, 그 인정을 니진스키가 온전히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반영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니진스키에게는 크고 작은 거울 자기대상이 있지만, 이상화 자기대상이나 쌍둥이 자기대상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을 찾기는 어렵다. 니진스키가 완벽하고 전능한 이미지와 융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과의 협업으로 더 위대한 예술적 성취를 이뤘을 수도 있다.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니진스키’ 공연사진. 사진=쇼플레이 제공>

<니진스키>에서 “난 어디에나 있다”라는 노래 가사는 자기대상의 개념을 알고 쓴 가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자기대상의 개념에서 볼 때 훌륭한 의미를 담고 있는 가사임은 분명하다. “난 어디에나 있다”라는 말을 “나의 자기대상은 어디에나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Part1. ‘니진스키’에 이어, Part2. ‘디아길레프’와 Part3. ‘스트라빈스키’가 ‘쇼플레이 인물 Project’로 만들어질 예정인데, 니진스키가 아닌 디아길레프와 스트라빈스키의 관점에서 볼 때 자기대상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자기대상일지 궁금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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