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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발레]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격정이 아닌 고독을 표현한 신승원 (제9회 대한민국발레축제)

발행일 : 2019-06-19 17:38:11

제9회 대한민국발레축제 참가작, 국립발레단 제179회 정기공연 <마타 하리>가 6월 18일부터 1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국립발레단, 대한민국발레축제조직위원회, 예술의전당 주최로, 발레리나 신승원과 김지영이 마타 하리 역으로, 발레리노 박종석과 이재우가 마슬로프 역으로 출연한다.
 
발레극으로 표현된 <마타 하리>는 격정의 마타 하리가 아닌 고독의 마타 하리를 연상하게 만드는데, 큰 감정 표현보다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을 절제된 상태에서 표현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사진.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사진.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 격정의 마타 하리가 아닌 고독의 마타 하리? 큰 감정 표현보다,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을 절제된 상태에서 표현한다
 
<마타 하리>는 심플한 무대, 칼라보다 흑백에 가까운 무대에서 펼쳐진다.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는 색의 화려함, 동작의 테크닉보다 진지한 정서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느린 발레, 천천히 모든 동작을 보여주는 발레라고 느껴진다.
 
단순 발레 안무 공연이 아닌 발레극은 스토리텔링과 감정 표현이 모두 중요하다. <마타 하리>는 크고 화려한 동작으로 큰 스토리와 큰 감정 표현을 하기보다는,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을 절제된 상태에서 표현하는 시간이 많다. 화려한 연속 회전, 화려한 공중 동작, 연속되는 군무 시간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안무뿐만 아니라 음악도 그러하다. 무대, 영상도 심플하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마타 하리>를 볼 때 무용수 개인에게 더 집중하도록 만든다. 격정의 마타 하리가 아닌 고독의 마타 하리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동명의 뮤지컬을 관람한 경험이 있는 관객은 색다름에 신선할 수도 있고, 기대하는 정서와 달라 심리적으로 머뭇거리게 될 수도 있다.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사진.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사진.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나무뿌리를 연상하게 만드는 영상은 뇌의 뉴런이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서로 복잡하게 엉켜 있는 감정과 생각을 이미지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격정이 주된 정서와 감정이었으면 나무뿌리 영상이 아닌 불타오르는 영상이 더 어울렸을 수도 있다.
 
◇ 신승원의 마타 하리는 아름다운가? 처연한가?
 
<마타 하리>에서 신승원은 사랑받고 보호받고 싶으나 그렇지 못하는 마음을 몸으로 표현한다. 하체를 움직이지 않고 상체만 움직일 때 인형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완벽한 아이솔레이션을 발휘하는 것이다.
 
<마타 하리>는 마타 하리의 비중이 크고, 군무 분량이 많지 않다. 감정을 빠르지 않게 표현하는 안무가 많기 때문에,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몸을 통한 감정 표현이 중요한 작품이다. 감정적인 디테일에 있어서 더 많은 것이 느껴진다고 좋아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고, 다소 어렵게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사진.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사진.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박수치고 환호할 시간을 별로 주지 않고 이어지는 공연이기 때문에, 무용수의 입장에서 보면 관객의 반응을 중간에 충분히 확인하지 못하고 안무를 해야 한다.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볼 때 일반적인 발레극이 뮤지컬 같은 정서를 준다면, <마타 하리>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정서를 준다고 볼 수 있다.
 
단순 테크닉이 아닌 섬세한 감정 표현의 안무를 소화하면서, 관객들과 주고받는 감성 또한 바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을 신승원은 멋지게 승화했다. 천천히 진지하게 펼쳐지는 동작은 관객 입장에서 볼 때 디테일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표현하기는 빠른 테크닉의 동작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사진.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사진.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을 주목하게 만든 지휘자 케빈 로즈와 주역 무용수들에게 환호의 시간이 되도록 배려한 예술감독 강수진
 
<마타 하리>의 커튼콜은 지휘자 케빈 로즈가 같이 연주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어떻게 주목받게 만드는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강수진이 주역 무용수들에게 환호의 시간을 어떻게 배려하는지 알 수 있는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케빈 로즈는 커튼콜 때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무대로 올라간 후 자신이 박수받는 것보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관객의 관심이 가도록 만들었다. 점잖게 소개하는 게 아니라 열정적으로 단원들을 일으켜 세웠고, 한 번만 박수받게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박수받게 만들었다. 멋진 공연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도 어쩌면 공허함을 느낄 수도 있는 단원들을 배려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사진.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사진. 사진=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강수진은 커튼콜 때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단장이나 예술감독이 주역보다 더 환호받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은데, 강수진은 아예 무대에 오르지 않아 주역 무용수가 끝까지 제일 앞에서 돋보이게 만들었다.
 
강수진이 커튼콜 때 무대에 올랐다면 관객들은 당연히 좋아했을 것이지만, 예술감독의 워낙 큰 존재감으로 인해 다른 무용수들이 덜 빛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강수진의 국립발레단 단원들을 위한 배려와 사랑, 그리고 일부러 존재감을 발휘하지 않아도 나서서 인정받지 않아도 ‘강수진’이라는 자신감이 <마타 하리>를 커튼콜까지 더욱 감동적인 무대를 만드는데 함께했다고 느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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