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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어린 의뢰인’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발행일 : 2019-05-17 11:23:53

장규성 감독의 <어린 의뢰인(My First Client)>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화이다. 사건에만 집중하지 않고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영화는 던지는데,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근본적인 것부터 달라졌을 것이라고 느끼는 관객도 많을 것이다.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유죄인가, 무죄인가?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질문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판결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유죄냐 무죄냐를 따지며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유죄라는 의견을 확실하게 가진 사람, 무죄라는 의견을 확실하게 가진 사람도 있고, 법적으로 무죄이나 인간적으로 유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법적으로 무죄라는 것도 보편타당하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무죄라는 뜻이 아니라 현행법의 한계 속에서 무죄일 수 있는 것인데, <어린 의뢰인>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하나의 의견을 관철시키기보다는 관객이 각자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선까지 화두를 던지는 것에서 멈춘다. 확정적 선언의 효과보다 더 큰 파장을 기대했기 때문일 수 있다.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린 의뢰인>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지면서 시작한다. 자막이나 내레이션을 통해 명확하게 주입식으로 전달했을 수도 있지만, 다양한 의견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에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영화에 점차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 연출법이 주목된다.
 
“아저씨! 엄마는 어떤 느낌이에요?”라고 다빈(최명빈 분)이 정엽(이동휘 분)에게 물은 것은 정서적인 질문, 감정의 질문이기도 하지만 무척 근본적인 질문이라는 점을 더 먼저 염두에 둬야 한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에요?’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는 질문인데, 정서와 감정의 반전과 결단을 하게 만드는 중요한 암시의 기능을 한다.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학대! 법적인 측면, 정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다
 
<어린 의뢰인>에서 다빈이 가구 위에 보관된 사진을 꺼내 보는 장면에서 배경음으로 나오는 피아노 소리는 매우 슬프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학대의 단면을 보면서 관객은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은 분노를 느낄 수 있는데, 영화는 아동학대를 법적인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 모두에서 바라본다.
 
아직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않은 영화 초반에도 정서적인 울림이 강하게 다가와 눈물이 난다. 본격적으로 슬프기 전부터 슬퍼진 관객은 영화 후반부에는 정말 내가 구타당하는 것처럼 힘들어질 수도 있다.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실제로 일반 시사회에서 영화 전반부터 훌쩍거리기 시작한 관객들도 있었고, 뒤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울먹이며 영화를 봤는데, 의식이 기억하든 무의식이 기억하든 아동학대를 받은 적이 있는 관객들은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슬픔과 아픔을 다시 느낄 수도 있다.
 
◇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아무도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 때의 답답함은 <어린 의뢰인> 전반부의 주요 정서 중의 하나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적극적인 외면을 하기도 하고, 소극적인 외면을 하기도 한다. 어떤 외면이 다빈과 민준(이주원 분)을 더 힘들게 할까? 어떤 외면이 다빈과 민준을 더 좌절하게 만들까?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적극적인 외면에는 저항하거나 더 강력하게 어필하려고 할 수도 있지만, 반복되는 소극적인 외면에 점차 기운이 빠지고 의욕과 의지 자체가 상실될 수 있다. 학습된 무기력, 학습된 무력감인데, 학대에 대한 공포와 맞물려 더욱 좌절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정엽도 처음부터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안타까움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처음부터 밀착해 동화되지는 않았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라고 느낄 때의 소심한 대처와 소심한 외면을 정엽은 했던 것이다. 다빈과 민준, 정엽은 엄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공통점은 반전에 대한 정서적 개연성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다른 사람의 손이 근처에만 와도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피하는 다빈을 보면 순간순간이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이 돼 너무 마음이 아프다. 다빈과 민준에게는 세상이 안전하지가 않은 것이다. 어른들을 믿을 수 없고, 세상을 믿을 수 없다. 그들에게 세상은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현실에서 아동학대를 받고 있는 아이들과 과거에 아동학대를 받았는데 이젠 어른이 된 사람들은 모두, 의식의 수준에서든 무의식의 수준에서든 깊은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어린 의뢰인>이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의 공감과 해소를 할 수 있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린 의뢰인’ 스틸사진.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린 의뢰인>에서 지숙(유선 분)이 머리를 묶는 행위가 반복될 때 관객은 같이 두려움에 경악할 수 있다. “연기였지만 나조차 내가 싫었다”라고 유선은 밝힌 바 있는데, 영화 속 지숙에게는 그런 반성이 전혀 없고, 실제 세상의 많은 지숙들은 아직도 반성 없이 자신이 더 억울하다고 생각하며 합리화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관객은 답답함과 분노의 마음이 다시 폭발할 수 있다.
 
영화 마지막에는 지숙을 정당화시키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지숙을 불쌍하게 여길 수도 있는 이유를 살짝 던지며 한쪽으로 쏠릴 수 있는 관객의 감정을 완충하게 만든다.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회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그렇지만 사회의 문제라고 과잉 일반화해 초점을 흐리지 않겠다는 감독의 절묘한 선택이 주목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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