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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생일’ “그런 일 겪고 아무렇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발행일 : 2019-03-19 13:59:06

이종언 감독의 <생일(Birthday)>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에 ‘네가 없는 너의’ 생일이라는 남겨진 사람들의 정서가 더해진다.
 
떠나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엄마 순남(전도연 분)은 내부자이고 당사자이지만 그러면서도 약간 떨어져 있던 인물이다. <생일>은 그 인물이 같이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도 공감하면서 결국은 자신이 치유를 받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각자 애도하고 추모하는 방법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고, 모두를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던진다. 다른 사람과 슬픔을 공유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존중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공유하면 훨씬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
 
순남은 <생일> 초반에 외국에서 돌아온 남편 정일(설경구 분)이 들어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집을 비롯한 물리적 공간과 내면의 마음 모두 해당된다.
 
그것을 아는 정일이 한 번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 초반에는 정일이 왜 외국에서 따로 살게 됐는지 알려주지 않는데, 떨어져 있던 시간 사이에 벌어진 참사에 그들의 간극이 많이 생겼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순남은 정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심지어는 같은 아픔을 겪은 희생자 가족들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순남이 다른 사람과 상황, 환경 등 더 이상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아들 수호(윤찬영 분)가 이제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순남은, 어떤 것이든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수호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 수호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다 내 탓이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순남의 잘못은 아니지만, 모성애와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미안함이 크기 때문이다.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생일>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순남은 수호가 마음속에서 떠나갈까 봐 무섭다. 이런 순남에게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는 조언이 도움이 될까?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을 놓을 수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놓으라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일 수 있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아빠 정일은, 순남을 타이르고 비난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어떤 사람은 정일이 더 적극적으로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기다려주는 정일의 마음에 감정이입하면 그런 정일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느껴져 순간 울컥해진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순남뿐이 아니라, 정일, 오빠와의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동생 예솔(김보민 분),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모두 해당될 것이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 각자 애도하고 추모하는 방법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 모두를 존중해야 한다는 영화의 메시지!
 
<생일>은 수호를 기억하는 순남, 정일, 예솔, 세 사람의 시선을 담고 있다. 수호의 가족들은 미안함에 머물지 않고 죄책감을 느낀다. 실제로 죄를 진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뻔뻔하게 변명만 하는데, 피해자의 가족이 죄책감을 느끼는 현실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같은 입장인데도 피해자 가족들에게 반감을 드러내는 순남은 다른 유가족들과 융화하지 못한다. 아니 융화하기를 거부한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순남의 디테일한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보면 이상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남편인 정일 또한 그렇게 보기도 했었다.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예솔은 아빠 정일에게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려고 손으로 가리고 비밀번호를 눌렀었다. 갯벌 체험을 간 예솔은 장화도 신지 않으려고 하고 물에 들어가기가 두려워한다. 오빠의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일 수도 있고, 오빠의 마음을 항상 생각하고 있기에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을 수도 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바로 먹지 못하고 반을 남겨서 집에 가져가 수호에게 주겠다는 마음을 먼저 가지고 있으며, 본인도 새 옷을 입고 싶은데 새 옷을 사달라고 할 수도 없고, 하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이다.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예솔은 어리광을 부려야 할 나이에 어른이 되어 버린 어린아이이다. 아직 애인데 애답게 크지 못하는 어린아이이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과 상황 속에서, 보호받고 살아야 할 나이인데 누군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마음먹게 된 예솔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 다른 사람과 슬픔을 공유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공유하면 훨씬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생일>은 슬픔을 공유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래도 슬픔을 공유할 때 훨씬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모두 보여준다. 수호의 생일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나도 아픔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견디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생일’ 스틸사진. 사진=NEW,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제공>

친구들과 같이 하려고 했던 것, 친구들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면서 지내는 은빈(권소현 분), 달려와 순남을 안아줬던 우찬엄마(김수진 분)가 흘리는 눈물에 관객도 같이 펑펑 울 수 있다. 3대의 카메라로 30분의 롱테이크로 생일 장면에서의 배우들의 감정을 담아내, 관객이 감정의 단절과 점핑 없이 몰입하게 만들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그런 일 겪고 아무렇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라고 정일에게 말하는 동생 정숙(이봉련 분)의 말은 필자에게도 큰 위로가 됐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무슨 말로 리뷰를 써야 할지 막막했는데 정숙의 말에 느낀 그대로 리뷰를 쓸 수 있었다. 정숙을 통해 위로를 전한 감독에게 감사드린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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