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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악질경찰’ “잘 들어, 이 세상 어디에도 780원짜리 인생은 없는 거야”

발행일 : 2019-03-15 07:00:00

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Jo Pil-ho: the dawning rage)>은 선(善)과 악(惡)의 대결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악과 더 큰 악의 대결을 통해, 우리 내면과 사회의 본질을 꿰뚫고 들어가려고 시도한다.

세월호 참사를 상업영화에서 다뤘다는 점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상업영화에 이용했다고 거부감과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남긴 정서적인 면을 감독은 용감하고 진정성 있게 영화에 담으려고 했는데,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만의 추모와 애도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과 일상에서의 추모와 애도를 하게 만든다. <악질경찰>은 영화를 볼 때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더 마음 아프고, 이틀 지난 지금 리뷰 쓰면서 더욱 눈물이 나는 작품이다.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악과 더 큰 악의 대결이다
 
<악질경찰>에서 경찰은 정의의 사도도 민중의 지팡이도 아니다. 검찰도 마찬가지이다. 대놓고 미워하며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느껴진다.
 
만약 이런 측면에서 볼 때 2~3년 전에 개봉했으면 영화 속 악질경찰, 부패검사의 모습을 받아들이기에 더 불편한 관객들이 많았을 수도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들이 더 나쁠 수도 있다는 추측과 그래도 좋은 모습이기를 바라는 마음의 갈등을 겪으며 관람했을 관객이 지금보다는 더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그렇다고 <악질경찰>이 경찰, 검찰을 비난하는데 초점을 둔 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 영화 속 경찰, 검찰, 재벌은 그 자체를 특정했다기보다는 권력과 이기심이 가득한 어른들의 세계를 대표할 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 세월호 참사의 정서적인 측면을 담은 영화!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겹쳐 보인다
 
<악질경찰>에 대해 세월호 참사를 상업영화에서 다뤘다는 점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상업영화에 이용했다고 거부감과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아픔을 적극적으로 공유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다시 찌르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악질경찰>이 주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삶에, 우리 사회 전체에 미치고 있는 정서적 측면을 영화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를 제대로 만들거나, 아니면 어설프게 다룰 바에 아예 언급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이분법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지만 사건과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긴 정서적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다. 우리가 가진 정서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할 때, 특정한 장소에서만 추모하고 애도를 하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추모하고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애도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2016년 개봉한 <너의 이름은>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특정 지역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 전체의 정서가 바뀐 것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면, 2019년 개봉하는 <악질경찰>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바뀐 우리의 정서를 영화 속에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악역을 존재감 있게 표현한 이선균, 그 시간에 머물러 살 수밖에 없는 인물을 표현한 전소미
 
악질형사 조필호 역의 이선균은 악역도 존재감 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선균의 목소리는 악당의 이미지에도 잘 어울린다. 전소미는 그 시간에 머물러 살 수밖에 없는 미나에 감정이입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커서 ‘진격의 거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며 내면을 드러낼 때의 디테일도 눈에 띄었다. 영화는 미나에 대해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사람일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런 미나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니들 같은 것도 어른이라고?”라고 말하는 미나의 대사는 감독이 영화 속으로 던지는 화두일 수 있다. “법 앞에서 단 만 명만 평등하다.”라고 말하는 정이향 회장(송영창 분)과 그의 오른팔 권태주(박해준 분) 그리고 검사 남성식(박병은 분)의 모습과 대비를 이룬다.
 
“잘 들어, 이 세상 어디에도 780원짜리 인생은 없는 거야”라는 조필호의 외침은 영화가 주는 가장 마지막 위로이자 애도이다. 관객이 영화 속에서 직면한 현실과 그 현실을 바라보는 박탈감을 그대로 두지 않고, 한 문장으로 관객이 생각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 이선균 배우와 이정범 감독이 느끼는 조필호 캐릭터
 
<악질경찰>에서 조필호가 착한 캐릭터였으면 사건, 사람, 장소, 공간 등 조필호가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됐거나, 경계에서 멈칫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영화를 관람할 관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악랄함 속 인간다움을, 거침 속 따뜻함을 어떻게 표현했고,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언론/배급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필자의 질문에 이선균 배우는, ‘조필호는 직업만 경찰이고 범죄자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하면서 조필호의 변화를 더 중요하게 여겼고 ‘경찰보다는 양아치, 쓰레기답게, 거칠게, 나쁘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조필호가 가진 나쁜 성질, 본능을 쫓아 나쁜 사람이 어떤 사건을 맞닥뜨릴 때 변하는 내적인 갈등, 심경, 각성에 초점을 맞추고 연기를 했다고 대답했는데, 질문 후 바로 이어지는 대답에 캐릭터를 이해하고 소화하고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정범 감독은 이 영화에서 조필호가 갖는 감정의 낙폭이 크다고 말했다. 형사일 때와, 미나와 겪는 사건으로 인해 지옥으로 떨어지고 뭔가를 겪고 난 후 낙폭의 차가 크다고 알려줬다.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선한 캐릭터, 말랑말랑한 캐릭터일 수도 있었지만, 감독이 원했던 것은 하나의 충격이고, 영화가 끝났을 때 진자의 폭이 큰 인물일수록 관객들에게 변화가 주도적으로 전달될 것이라고 알려줬다,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신의 안위 말고는 관심이 없는 인물이 변한다는데서 오는 도전을 이야기하면서, 감정의 낙폭과 몰입감, 긴장감을 가지고 끝까지 관객들이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악질경찰’ 스틸사진.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청년필름, 다이스필름 제공>

감독은 <악질경찰>에 394명의 스태프와 71명의 배우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감독이 숫자를 언급한 것은 영화를 만든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그만큼 세상에 있는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했다. “잘 들어, 이 세상 어디에도 780원짜리 인생은 없는 거야”라는 대사가 다시 떠오른다.
 
이정범 감독은 자신의 진정성이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냈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선사한 애도 과정에, 감독 또한 이제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하기를 바란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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