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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공연예술 창작산실 ‘가미카제 아리랑’ 조선인 가미카제! 일본의 협력자인가? 불행하게 죽은 안타까운 조선 청년인가?

발행일 : 2019-02-15 16:30:3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극발전소 301 주관, 아트리버 기획.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 <가미카제 아리랑>이 2월 9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전석 매진으로 공연 중이다.
 
조선인 가미카제를 일본 제국주의의 협력자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불행하게 죽은 안타까운 조선 청년들의 슬픈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가미카제 아리랑>는 계속해서 던진다. 연극 후반부에 우는 관객들이 많은데, 그들의 울음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 조선인 가미카제! 일본 제국주의의 협력자인가? 암울한 시대에 힘없는 땅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마감한 청년들인가?
 
<가미카제 아리랑>은 비행기 소리가 불안감을 조성하며 시작한다. 기체 결함으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조선인 가미카제의 목소리를 통해 애써 담담한 척하려는 노력이 전해진다.
 
조선인 가미카제는 일본 제국주의의 협력자인가? 암울한 시대에 힘없는 땅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마감한 청년들인가? 연극은 이 화두를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해 그들의 삶 속으로 그들의 생각 속으로 그들의 마음속으로 천천히 드리고 깊숙이 들어간다.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일본의 많은 가미카제를 다룬 작품들에 등장하는 조선인 가미카제는 한결같이 함께 싸워준 협력자로 그려지는 일이 많았고, 이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 작품이 기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 중에서도 일본 군복을 입은 조선인 최정근(임일규 분), 민영훈(권겸민 분), 김상필(한일규 분), 탁경현(김경남 분)에 대한 시선 또한 두 가지로 나뉜다. 불행과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조선인 동포로 대하는 사람도 있고, 김상필의 형 김상열(리민 분)처럼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현재까지 김상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가미카제 아리랑>은 누구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인지 노골적이고 배타적으로 결론내기보다는,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들을 있는 그대로 먼저 봐야 한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려준다.
 
만약 현재의 우리가 몸체 자살 공격으로 명분 없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어떨까? 내 나라의 전쟁, 나의 신념과 일치하는 일을 위해서도 아니라 다른 나라의 전쟁, 나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전쟁의 소모품이 돼야 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 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마음이 답답해진다. 슬픔, 아픔, 눈물은 연극 속 느낌뿐만 아니라 현실의 감정이기도 하다.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을 이완하는 방법, 불편한 이야기와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공존하게 만드는 똑똑한 선택
 
<가미카제 아리랑>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긴장을 이완하는 방법이 눈에 띈다. 자살 공격을 앞둔 사람들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과 정서로만 극을 이끌지 않고, 시를 이야기하고, 하모니카로 ‘도라지 타령’, ‘아리랑’을 연주하는 서정성을 전달한다. 자칫 잘못하면 극적 긴장감을 와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완화와 이완으로 승화하는 연출이 주목된다.
 
박성웅(변주현 분)의 처 김유자(이항나 분)와 최정근의 약혼녀 우메자와(강유미 분)는 현대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는 긍정적일 수 없는 여성상이다. 그렇지만 <가미카제 아리랑>은 그 시절에 그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공감하게 만든다.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이항나는 조선인 여자이고 우메자와는 일본인 여자로 설정한 점은 여성상을 표현함에 있어 균형감을 잡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마리(김채이 분)는 극 중에서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캐릭터이자 젊은 여성을 대표하는 캐릭터인데, 마리가 엄마인 김유자, 이전에 알지 못했던 우메자와와 교감하는 점은 한 쪽으로 쏠릴 수 있는 캐릭터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제작진은 극중 여성 캐릭터를 설정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가미카제 아리랑>에서 박성웅은 관객들이 충분히 미워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변주현 배우의 실감 나는 연기는 공연 시간만이라도 그를 미워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미움의 대상이 박성웅이 될 경우 정서의 초점은 희석될 수 있는데, 서준길(박신후 분)은 이를 방지하고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가미카제 아리랑>은 크고 작은 애정 라인이 있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사랑의 마음이 싹튼다는 이야기는 극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는데, 이어지는 감정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물의 솔직한 내면을 표현한 연출과 연기는 무척 돋보인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고, 그들의 삶에도 인간 본연의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공연 후반부에는 우는 관객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아픔이 느껴져 울었기도 하지만 동질감이라는 공감에 울음을 참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가미카제 아리랑’ 공연사진. 사진=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제공>

<가미카제 아리랑>은 전석 매진으로 재공연이 기대되는데, 재공연이 이뤄질수록 관객들은 더욱 많은 공감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규 관람객뿐만 아니라 재관람 의사를 가진 사람도 꽤 있을 것인데, 재공연 때 배우들의 감정은 더욱 절절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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