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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미래의 미라이’ 가장 어른스러우면서 중심 정서를 잡아주는 인물은 가장 어린 미라이

발행일 : 2019-01-07 06:53:06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MIRAI)>에서 4살 소년 쿤에게, 첫눈이 오던 날 동생 미라이가 찾아온다. 부모님의 관심은 이제 온통 미라이에게 향하고, 인생 최초로 설움과 좌절을 느낀 쿤에게 미래에서 온 소녀 미라이가 찾아온다.
 
동생이 생기자 부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4살 소년의 마음을 디테일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집안이라는 공간이 주는 연극적 느낌은 장난감 기차와 레일을 통해 이미지적 공간 확장을 이루며 스토리텔링의 확장과 반전의 암시로 이어진다. 가장 어른스러운 인물, 중심 정서를 잡아주는 인물은 미라이라는 점을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 동생이 생기자 부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4살 소년의 마음을 디테일하게 표현한 작품
 
<미래의 미라이>는 동생이 생겨 잠시 좋았지만 본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에 대한 불만을 디테일 있게 잘 표현한 작품이다. 엄마, 아빠가 나의 세상이고 세상의 중심은 나였는데, 이제는 내가 아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좌절로,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랑받고 보호받지 못한다는, 더 이상 안전하고 평화롭지 않다는 멸절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아이의 특권을 가지지 못하는 4살 소년 쿤은 미라이 앞에서 오히려 어른이 되려고 한다.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아직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에 관심 밖으로 멀어지는 것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차라리 어른처럼 행동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지도 않자, 동생에 대한 미움이 더 커진 4살 소년의 마음을 영화는 잘 표현하고 있다.
 
자고 있는 동생의 볼을 잡아당기는 소심한 복수를 한 뒤 키득키득 웃으며 속 시원해했으나, 결국 동생을 울리고 엄마에게 더 크게 혼이 난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보다는 혼을 내는 엄마가 쿤의 눈에는 도깨비 할멈으로 보이는데, 감독의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보는 안목을 애니메이션 속에서 잘 구현하고 있다.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미래의 미라이>는 쿤의 마음을 읽어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렇다고 어설픈 충고와 위로를 하기보다는 같은 경험을 통해 역지사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랑스러운 강아지 윳코는 의인화돼 사람의 모습으로 쿤의 앞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윳코는 쿤이 태어나기 전에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쿤이 태어난 후 쿤의 부모로부터 받던 관심을 예전처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쿤에게 불만을 표현한다. 쿤을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서있게 만들지 않은 디테일은 돋보이는데, 이는 쿤이 공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 또한 한다.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아빠에 공감하며
 
<미래의 미라이>는 엄마가 아닌 가족 구성원, 아빠와 오빠의 육아에 대한 어려움과 갈등 또한 실감 나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아빠의 마음뿐만 아니라 엄마의 마음을 가진 관객들로부터도 공감을 얻게 만들 것이다.
 
아빠는 갓난아이인 미라이뿐만 아니라 쿤을 대하는데도 어려움을 느낀다. 자전거를 잘 타게 해주고 싶지만 마음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에 안도와 공감하는 아빠들도 많을 것이다.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 가장 어른스러운 인물, 중심 정서를 잡아주는 인물은 미라이
 
<미래의 미라이>는 사소한 일상의 가치와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 정서가 공존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영화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인물, 중심 정서를 잡아주는 인물을 꼽으라면 가장 어린 미라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작품 속 등장인물은 거의 대부분 상황과 선택에 있어서 흔들리는 인물이다. 실수를 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할 때도 있다. 내면의 어려움과 갈등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 또한 가진 경우가 많다.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그런데 미라이의 경우, 갓난아이 미라이와 미래에서 온 미라이 모두 내면의 갈등을 크게 보이지 않는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다른 사람들을 수용할 줄 안다.
 
언론/배급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필자의 질문에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미라이는 천사, 길잡이라고 볼 수 있으며, 영화 속 인물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고 답했다.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 집안이라는 공간이 주는 연극적 느낌! 공간을 확장하는 기차와 레일!
 
<미래의 미라이>가 펼쳐지는 주된 공간은 집안이다. 2D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집 내부는 입체적이라기보다는 세팅된 연극적 공간처럼 느껴진다. 집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집안을 정면으로 보는 장면이 많은데, 마치 관객석에서 무대를 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집 내부를 보면 벽이 없고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 역시 연극적인 공간으로 보이도록 만들고 있다. 벽이 없다는 것과 계단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도 충분히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미래의 미라이’ 스틸사진. 사진=얼리버드픽쳐스 제공>

한정된 공간은 한정된 정서를 만들고, 등장인물의 내면 또한 한정되고 정리돼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 한정된 공간을 확장하는 것은 기차와 레일 장난감이다. 기차와 레일이 없다면 너무 안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내부 공간은,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고 변화를 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형성해 반전을 위한 정서적 암시 역할도 한다.
 
<미래의 미라이>은 일본 배경으로 일본 색깔을 내포한 작품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잘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두 가지의 조화는 이 작품을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부문에 애니메이션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되고, 제76회 골든글러브 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 후보에 아시아권 영화 최초로 오르는데 기여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정서를 설정할 때 벤치마킹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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