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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권수영 교수, EBS ‘배워서 남줄랩’ 명강연 선보여

발행일 : 2018-11-22 13:41:03

▷ 진짜 내가 누군지 아세요?
▷ 나 관계 중독이니?
▷ 내 안에 다섯 명의 유령이 산다?!
▷ ‘착한 아이 콤플렉스’와 유령들의 갈등

 
11월 19일 방송된 EBS 1TV <배워서 남줄랩 시즌2>에 최근 인기 강연프로그램에서 ‘상담학의 대가’로 출연해 주목받았던 권수영 교수(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학과)가 출연했다. 주제는 “나 관계 중독이니?”이다.
 
21세기를 살고 있으나 아직도 ‘동방예의지국’의 구성원임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 틈만 나면 자신의 SNS 댓글을 살피느라, 회사에서는 모나지 않은 사람이 되느라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청중들에게 던진 권수영 교수의 “진짜 내가 누군지 아세요?”라는 돌발적인 질문은 모두를 강연 안으로 빨려들게 만들었다.
 
◇ “내 안에 5명의 유령이 산다?!”
 
먼저 권수영 교수는 “나 관계 중독이니?”라는 주제를 선보이며 실은 “내 안에 5명의 유령이 산다.”라고 폭로하는데, 그가 밝힌 비밀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흥미로운 내면 현실로 몰고 간다. 놀랍게도 권 교수는 자신이 입고 나온 군데군데 찢어진 힙합 바지를 가지고 이를 설명한다. 그가 설명한 유령들의 정체를 간략하게 묘사해 본다.
 
① 내가 생각하는 나
② 남이 보는 나
③ 남이 생각하는 나
④ 남이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나
⑤ 영원히 변치 않는 본질적인 나
 
① 1번 유령 : 내가 생각하는 나
먼저, 권 교수는 ‘내가 생각하는 나’란 50대 대학교수가 군데군데 찢어진 힙합 바지를 입고 TV에 나오기로 결심하면서 떠올리는 자신의 이미지다. 이는 ‘나는 젊은이들과 충분히 소통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② 2번 유령 : 남이 보는 나
 
2번 유령인 ‘남이 보는 나’는 내가 절대로 알 수 없는 상대방의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이미지다. 어떤 사람은 그 힙합바지를 입고 나온 교수를 보면서 “아, 연예인이구나!” 혹은 “음악 하는 사람인가?”하고 보는 시각을 가지게 마련인데, 이것이 2번 유령의 특징이다.
 
③ 3번 유령 : 남이 생각하는 나
 
3번 유령인 ‘남이 생각하는 나’는 두 번째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서 “아, 저 사람은 우리와 소통을 하고 싶구나!”라는 나름의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하는 단계이다. 누구나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다양한 생각에서 비롯된 이미지들을 모두 헤아려 알기는 어렵다.
 
④ 4번 유령 : 남이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나
 
이번 강의에서 핵심은 바로 4번 유령인 듯하다. 이 유령의 정체는 ‘남이 생각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나’이다. 이 유령은 “저 사람이 분명히 나를 이렇게 생각할거야!”라고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이미지다. 십말이초 레퍼들이 모두 혼란스러워할 때 때마침 권 교수의 적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방송 전 신세대 레퍼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힙합 바지를 입고 왔던 교수가 청중 한 두 명이 약간 이상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고 느꼈다고 가정해 보라. 스스로 “저 사람은 나를 분명히 비웃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모든 청중들이 “왜 저렇게 오버하지?”라고 자신을 생각한다고 느끼면, 자신의 수치스런 이미지에 사로잡히고 만다. 바로 이 4번 유령의 심각한 장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제 이 4번 유령에 사로잡히면 찢어진 힙합바지를 입고 있는 그 자리가 곤욕스러울 수 있다. 야심차게 입고 온 소통의 아이콘인 힙합바지는 강연장에서 주책바가지 꼰대의 상징으로 변신한다. 어쩌면, 다시는 이러한 복장으로 TV 앞에 나오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아예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두려워 할 수도 있다.
 
4번 유령의 장난은 우리 모두를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몰고 가기 쉽다. 분명히 타인의 숫자만큼 다양한 자신의 이미지(3번 유령)들이 존재할 텐데, 한번 4번 유령이 발동을 걸면 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예로 권 교수는 방송인들이나 유명 인사들이 한, 두 명의 악성댓글을 읽고 나서, 4번 유령이 발동하면 모든 국민들이 모두 다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지적하기도 했다.
 
⑤ 영원히 변치 않는 본질적인 나
 
만약에 이를 개의치 않고 그래도 “나는 나답게 살 거야!” 한다면 그것은 5번 유령인 ‘영원히 변치 않는 본질적인 나’로 회복된 상태다. 문제는 다른 유령들의 출몰과 갈등 때문에 이러한 5번 유령을 꿋꿋하게 지켜나가기란 매우 어렵다는 사실에 있다.
 
특히 권 교수는 1번 유령인 ‘내가 생각하는 나’와 4번 유령인 ‘남이 생각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극이 커진다면 5번 유령을 찾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 “내가 생각하는 나” vs. “남이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나”
 
만약 학창시절 때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을 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수업이 끝났다는 종을 반복적으로 들은 학생, 만약 누가 나의 발을 밟아도 자신도 모르게 “죄송합니다.”라고 자동반사적으로 이야기하는 회사원,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말없이 고이 보내드린다는” 김소월의 시를 읊는 젊은이가 여기 있다면, 5가지의 유령 중 4번 유령인 '남이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나'에 과도하게 사로잡힌 사람일 수 있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권 교수의 강의에서 1번 유령과 4번 유령의 갈등은 매우 중요하기에 앞서 “질문을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의 예로 돌아가서 살펴보도록 하자. 권 교수에 의하면 질문을 하려고 했던 그 학생이 “내가 궁금하니까 질문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면 1번 유령이 강한 학생이다. 나는 궁금하면 못 참는 사람이니까.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질문을 하기 전에 “이 질문을 하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친구들은 멋있다고 할까 아니면 다 아는 뻔한 질문이란 생각을 할까?”라고 끊임없이 고민하다 때를 놓친다면 이는 4번 유령이 훨씬 강하게 작용하는 학생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한국 학생들이 주로 여기에 속한다. 즉, 내가 궁금하면 남 생각하지 않고 질문해도 될 법한데, 이놈의 4번 유령은 우리로 하여금 질문 하나도 주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유령이 몹쓸 잡귀인 까닭은 다른 유령과 자리를 나누지 않고 혼자 독점하여 점점 더 그 사람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확장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유령에 사로잡히면 자동반사적으로 사과를 한다거나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착하고 친절한 모습만을 보이려고 한다는 점이다.
 
◇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진 한국인
 
권 교수가 명명한 4번 유령의 정체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이 유령이 벌이는 농간은 체면 문화에 맞추느라 타인의 시선에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려고 끊임없이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발동하는 한국사회에서 남의 생각에 맞춰 살려고 애쓰는 유령에 홀리다가 진짜 자기를 잃어버린 우리네의 모습을 제대로 비춰준다.
 
우리가 한 사람임에도 여러 다른 내면의 목소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점을 비춰 볼 때 권 교수가 제시한 마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내적 공간과 그 갈등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유령 은유’는 실로 탁월하다.
 
권 교수에 의하면 진짜 문제는 1번 유령 즉 ‘내가 생각하는 나’와 4번 유령인 ‘남이 생각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 커지는 상황이다. 4번 유령이 커지면 커질수록 1번 유령은 작아지고 불안해진다. 그 때 나는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끝도 없이 노력하게 된다.
 
이를테면 부모로부터 무가치하다고 느낀 아이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기 위해 기꺼이 착해지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살면, 있는 그대로의 나대로 살면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4번 유령)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 4번 유령이 틈타는 구멍 : 불안
 
그렇다면 실제로 4번 유령이 틈타기 쉬운 구멍은 무엇일까? 이 유령은 무엇을 먹고 세력을 부풀릴까? 권 교수에 따르면 이 유령이 틈타는 구멍이자 가장 좋아하는 영양소는 바로 ‘불안’이다. 이 4번 유령은 불안을 통해 들어오고 불안을 먹으며 성장하여 다른 유령들 모두를 몰아낸 뒤 혼자만의 세상을 구축하려고 한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기저엔 바로 ‘불안’이 숨어 있다. 부모로부터 거절되고 버림받는 아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남에게 중요하지 않은 아이’라는 4번 유령에 사로잡혀 더욱 더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착한 아이가 되려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결국 5번 유령인 진정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게 된다.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 내가 과연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해당되는지 궁금하다면, 온라인 SNS와 유령들 사이의 모종의 관계에 좀 더 알고 싶다면, 1번 유령과 4번 유령 사이의 진검승부를 보고 싶다면 본 방송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번 방송은 총 2주에 걸쳐 방송되며 EBS <배워서 남줄랩 시즌2>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 5번 유령, 진짜 나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면...
 
이번 강의를 통해 진짜 나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진다면 권수영 교수가 최근 출간한 「나도 나를 모르겠다 (착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 보니)」를 정독해 볼 것을 추천한다. 이 책엔 이러한 심리구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다양한 비유, 철학, 신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그리고 신경과학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사진=레드박스 제공 <‘나도 나를 모르겠다’. 사진=레드박스 제공>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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