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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현실처럼 보이는 이야기, ‘나’는 어떤 사람일까?

발행일 : 2018-10-10 15:59:16

두산아트센터 제작, 윤성호 작, 전진모 연출의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이 10월 5일부터 2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 중이다. ‘DAC Artist 윤성호’라는 부제를 가진 이번 작품의 원안은,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이다.
 
초반에 무척 천천히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 작품은 관객을 바로 몰입해 감정이입하게 만들기보다는 제3자의 시야로 보도록 만든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누군가에게 감정이입하게 되는데, 현실에서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공감하는 과정 또한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 떠오른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 관객을 바로 몰입시키기보다는 제3자적 시야로 볼 수 있게 시작해, 점점 나의 이야기로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의 무대가 밝아지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일곱 명 중 여섯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회식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테이블의 세 면에만 배우들이 앉고 관객석 방향 좌석은 비워두는데, 장샘이(장샘이 역)는 처음부터 관객석으로부터 돌아서 등을 보이고 앉아있었다.
 
등장인물 한 명의 배치를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함으로써, 관객이 제3자의 시야를 가지게 만들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 현실적인 공간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실제로 회식할 때 테이블의 한 쪽 면을 비워두지는 않기 때문이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공연 전반부에는 관객을 바로 감정이입하게 만들기보다는 처음에는 모순과 부조리를 차분하게 바라보도록 유도하고, 후반부로 가면서 관객이 여러 인물 중 한 명에 감정이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작품의 작가 윤성호는 2017년 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DAC Artist)로 선정된 창작자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순과 부조리한 모습에 대해 탐구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알려져 있다. 공연 전반부의 현실적이지만 속도감 느린 설정은 작가의 감성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고 느껴진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 바뀐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야 할 것인가? 지켜야 할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인가?
 
책이 안 팔리는 시대, 잡지는 더욱 안 팔리는 시대에 한물간 인문사회과학 잡지 <시대 비평>에 서상원(서상원 역)이 새로운 편집장으로 부임하면서 기존 인물들과의 갈등이 커진다.
 
바뀐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야 할 것인가? 지켜야 할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인가? 이 작품은 이 질문에 대해 꾸준히 묻고 꾸준히 대답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아우르는 대답은 쉽게 나오지 못한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만약 이야기가 극적으로 빠르게 진행됐으면 관객은 바뀐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만 속도감을 내지 않고 무기력하고 답답한 실제 삶에서의 속도처럼 천천히 이야기와 연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관객은 마음을 결정하기까지 지속적으로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 그들이 되기보다는, 조용히 그들의 삶을 훔쳐보는 느낌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을 실제로 관람하면 연극이라기보다는 느린 소설이나 정적인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제작진은 관객이 바로 등장인물이 돼 관람하기보다는, 일정시간까지 조용히 그들의 삶을 훔쳐보게 만들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인터미션 후에는 사케를 마실 수 있는 술집으로 공간이 이동한다. 제1부가 업무의 공간(사무실)에서 술(소주와 맥주)을 마셨다면, 제2부는 술 마시는 공간(술집)에서 더 실제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고 보이기도 한다. 극은 더욱 역동적으로 변하고, 사람들은 속마음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다급해진다는 백석광(김남건 역)의 말에 극중 친구인 박용우(박용우 역), 회사 선배인 조형래(조형래 역)는 본인 또한 그러하다고 직간접적으로 동의를 하는데, 중년의 나이에 있는 관객들 또한 대부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나도 이 세상에서 뭔가 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답답함과 좌절감, 억울함이 특정한 사람만의 이슈가 아닌 시대의 이슈라는 점이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에는 잘 나타나 있다.
 
박용우는 움직일 수 있는데 움직이지 않으려고 결정한 팽지인(팽지인 역)의 내면 심리를 건드리면서 자극하는데, 이는 팽지인에게 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본인을 향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그런 모습을 극에서 박용우는 팽지인에게 투사한 것이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에 등장한 많은 사람들은 내가 사라져가는 멸절의 느낌, 무언가 해보려고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공통적으로 가지며, 그런 자기 내부의 분노와 미움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려고 한다. 이 작품이 그냥 현실의 다큐멘터리라고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서로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중심을 잡는 사람은 강말금(강수혜 역)이다. 찌질함을 드러내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자신의 공간과 마음의 평정을 지키려고 하는데, 성격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그렇게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공연사진.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장샘이는 이 작품에서 겉과 속이 가장 같은 인물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건 가식일 수도 있지만, 내면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표현하거나 표출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겉과 속이 같기 쉽지 않은 시대에 살면서,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에서 겉과 속이 가장 같은 역할을 할 때 배우 장샘이는 실제로 어떤 마음과 느낌을 가지는지 궁금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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