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9

문화예술
HOME > 문화예술 > ET-ENT연극

[ET-ENT 연극] ‘베니스의 선악과’ 많이 생각할 수도, 많이 웃을 수도 있는 신작 연극

발행일 : 2018-08-01 11:14:12

극단 다이얼로거가 제작한 <베니스의 선악과>가 7월 31일부터 8월 5일까지 예술공간 서울에서 공연 중이다. 최고은 작/연출, 황미현 기획의 신작 연극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 공연을 준비하는 극단의 연습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의 부제는 ‘베니스의 선악and’이다.
 
극중극 형태를 통해 선과 악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이 주목되는 작품인데, 서민균(샤일록, 강현 역)과 김진곤(연출 인혁 역)이 목청 높여 대결을 하는 시간도 있는데 관객들은 웃으며 즐거워하고 그 대결 후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설정은 인상적이다. 김현정(포셔, 지혜 역)은 고음의 빠른 대사를 구사할 때도 안정적인 발성과 대사전달력을 통해 강렬한 순간에도 관객을 밀착해서 이끌고 간다는 점이 돋보인다.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 작품의 부제가 ‘베니스의 선악and’인 이유는 무엇일까?
 
<베니스의 선악과>의 부제가 ‘베니스의 선악and’인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 제목 중 ‘선악과(善惡果)’에서 ‘과’는 ‘과일(果)’을 뜻하기도 하지만 ‘and’를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계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선악 다음에 무엇이 있다는 혹은 선악과 함께 무엇이 있다는 뉘앙스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극중극 형식을 통해 원작을 재해석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해석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많은 논의 끝에 열린 결말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암시가 작품의 제목과 부제에 들어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베니스의 선악과>는 논리적인 것을 파고들기 좋아하는 관객과 어이없는 것 같은 상황 속 진지한 대화를 통한 큰 재미를 누리기를 바라는 관객에게, 많이 생각할 수도 있고 많이 웃을 수도 있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 극중극 형태를 통해 선과 악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베니스의 선악과>는 극중극 형태로 진행된다. 극중극 속 <베니스의 상인>과 그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연습실이 주된 무대이다. 연극 속 캐릭터와 배우의 캐릭터의 공통점과 괴리감을 생각하게 만드는데, 무대 위 배우를 세 가지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관객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연극 속 등장인물로 생각할 수도, 극중극의 캐릭터로 생각할 수도, 실제 배우의 진짜 모습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작품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착한 놈이 아니면 나쁜 놈이라고 강렬하게 말하는 강현은, 극중극 속 샤일록의 내면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어쩌면 저런 모습은 서민균 배우의 진짜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선과 악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같은 대상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는 화두를 <베니스의 선악과>는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사람 자체가 나쁘다 아니다 할 수 있을까? 행동이 나쁜 것인가? 사람이 나쁜 것인가? 행동을 한 사람이 나쁜 것인가? 행동과 사람을 분리할 수 있는가? 선과 악은 누가 만든 개념인가? 선악이 진짜 존재하는가? <베니스의 선악과>는 계속 질문하고 답하고 다시 질문하고 다시 답한다.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실제로 관람하면 지나치게 피로감이 들 정도의 진지함으로만 진행되는 게 아니라 계속 웃으면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렇다고 진지한 상황을 코믹하게 해체하지도 않는데, 묘하게 수위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이는 최고은 연출과 배우들의 시너지라고 생각된다.
 
◇ 발성과 대사전달력 좋은 김현정, 연극 연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서민균과 김진곤
 
김현정은 공연 시작부의 대사부터 관객들을 압도적으로 사로잡는다. 발성이 좋고 억양이 좋은데, 낮은 목소리로 말할 때뿐만 아니라 고음으로 소리쳐 말할 때에도 뛰어난 대사전달력을 발휘한다.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김현정은 연습실에서 몸을 풀면서 스트레칭 동작을 통해 유연성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몸의 유연성은 움직임뿐만 아니라 대사를 펼칠 때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커튼콜 후 배우들이 춤을 추며 퇴장하는데 극 중에서 유연성 좋은 김현정이 춤을 춘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서민균은 정말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자연스러운 일상의 연기로부터 시작해 점점 진지하게 흥분하는 연기로 관객을 점점 빠져들게 만드는데, 몰입하게 만들면서도 큰 웃음 또한 감출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 돋보인다.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서민균과 김진곤이 격렬하게 대화하는 시간은 대사 배틀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갈등 고조의 2인극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공찬호(안토니오, 민석 역)과 박래영(밧사니오, 상우 역)은 서민균, 김진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멋진 호흡을 보여줬다.
 
이은주는 극중 조연출 율 역을 맡았는데, 천진난만한 질문을 던지는 율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율은 다른 사람이 툭 던지는 말에 하루 종일 상처받을 수 있는 스타일이다.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베니스의 선악과’ 공연사진, 사진=극단 다이얼로거 제공>

만약 관객 중에 지극히 율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다른 관객들이 자지러지게 웃는 시간에도 무대 위 율처럼 소심하게 마음 아파할 수도 있다. 토론 시간에 자신과 직접 관련 없는 이야기인데도 자신을 공격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처럼, 관객들 중에서도 개인적 경험과 성향에 따라서 각각의 장면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이야기처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니스의 선악과>는 배우들의 에너지 소모가 많은 정열적인 공연이다. 대사량도 많은 데다 디테일을 잘 살리지 못하면 극의 흐름이 끊어질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아치는 연기를 멋지게 해낸 <베니스의 선악과>의 배우들에게 큰 박수와 환호를 관객들이 보낸 것은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최신포토뉴스

위방향 화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