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9

문화예술
HOME > 문화예술 > ET-ENT영화

[ET-ENT 영화]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수채화 같은 서정성으로 애니적 감성이 충만한 작품

발행일 : 2018-07-08 22:38:43

오카다 마리 감독의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さよならの朝に約束の花をかざろう, Maquia: When the Promised Flower Blooms)>(이하 <이별 아침>)는 영원을 살아가는 마키아와 숲속에 버려진 아이 아리엘, 우연히 만나 운명이 된 두 사람이 단 한 번 함께한 시간을 담은 네버엔딩 스토리를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별 아침>은 긴 제목이 만드는 정서, 긴 제목이 알려주는 정서를 느낄수록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다. 수채화 같은 서정성으로 애니적 감성이 충분한 영화인데, ‘엄마란 무엇인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 ‘이별, 아침, 약속, 꽃, 장식’ 제목이 만드는 정서, 제목이 알려주는 정서
 
<이별 아침>의 한국어 제목을 보면 ‘이별, 아침, 약속, 꽃, 장식’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애니메이션을 관람하기 전에 추정하면 ‘아침, 약속, 꽃, 장식’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이별’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관람하면 ‘이별’은 긍정적인 이미지와 부정적인 이미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렇게 긴 제목을 선택해 바로 와닿지 않게 만들었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영화 제목이 정말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별의 혈족은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는 혈족이다. 사랑을 하면 오히려 혼자가 된다는 말은 진짜일까 생각하며 관람하게 된다.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제목부터 아이러니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 소녀의 감성을 따라간다.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기억을 간직해줄 히비오르 천이 같이 울어줄 것이라는 점은, 단절이 없이 이어지는 여성적 정서와 일반적으로 일맥상통한다.
 
◇ 애니적 감성이 충만한 작품, 수채화 같은 서정성
 
<이별 아침>을 직접 보면 영상이 무척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장면을 캡처하더라도 그대로 수채화 같은 서정성을 찾을 수 있다. 애니적 감성이 충만한 작품인 것이다.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3D 애니메이션에서 화려한 첨단 악당의 비주얼에 익숙해진 관객의 눈에는 <이별 아침>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고대 동물 레나토는 괴물의 모습처럼 어설프게 느껴져 서정성을 떨어뜨린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심을 파괴하지 않으려는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은 기술집약적인 장르이면서 노동집약적인 장르인데, <이별 아침>이 정서적인 면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 생각하면서 관람하면 더욱 감탄하게 될 것이다.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 엄마란 무엇일까?
 
<이별 아침>에서 아직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10대의 마키아는 혈족과 떨어지게 돼 자신 본인의 안위를 건사하는 것도 힘든데, 우연히 만나게 된 갓난아이인 아리엘을 맡게 된다.
 
엄마의 보호를 받아야 할 것 같은 나이와 외모를 가진 마키아는 아리엘을 만나고 나서, 아리엘의 생물학적 엄마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엄마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낳아야만 모성이 생기는 것일까? 직접 낳든 아니든 아이가 생기면 모성 또한 생기는 것일까? 영화는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엄마라는 존재는 울지 않는 거다.”라는 애니메이션 속 대사는 여러 번 반복되는데, 엄마로서의 책임감만 강조한 잘못되고 위험한 메시지일 수 있다. 울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과 강박은 감정을 억제하게 만드는 것인데, 아이의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 엄마의 감정은 억제돼야 한다는 것은 구시대적인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엄마라는 존재는 울지 않는 거다.”는 “남자는 울면 안 된다.”라는 말처럼 인간 본연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 위험한 말이다. 자신을 숨기고 제약하며 살아야 하는 이별의 혈족이라는 조건에 엄마는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는 점을 더했다는 점은 <이별 아침>을 마냥 서정적이고 낭만적으로 볼 수만은 없게 만든다.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엄마라는 존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사회와 주변 사람들 모두 그런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엄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은 결국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인간의 존엄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별 아침>은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많은 가치와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관객의 성향에 따라서 그리고 관객이 현재 느끼고 있는 마음에 따라서 다르게 전달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최신포토뉴스

위방향 화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