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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변산’(1) 랩으로 만들어진 음악영화, 시적인 랩과 시적인 대화가 주는 문학적 서정성

발행일 : 2018-06-24 19:42:07

이준익 감독의 <변산(Sunset in My Hometown)>은 솔직하지만 서투른 청춘들의 예측 불허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무척 현실적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랩으로 만들어진 음악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시적인 랩과 시적인 대화가 주는 문학적 서정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본지는 <변산>의 서정성에 관한 리뷰와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의 개념을 적용해 알아본 등장인물의 관계성에 관한 리뷰를 2회에 걸쳐 게재할 예정이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 나를 얽매고 있는 나의 기억과 그 기억 속 내 주변의 사람들
 
결정적인 순간에 긴장하는 박정민(학수 역)은 여섯 번째 도전하는 ‘쇼미더머니’ 오디션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고향을 지워버리고 싶어서 래퍼가 된 것인데, 만약 박정민이 고향을 지워버리고 싶지 않았다면 시인이 됐을 수도 있다. 본인을 얽매고 있는 고향과 고향에 대한 기억은 박정민을 나락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래퍼로서의 스웩을 표출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가사는 괜찮았는데 리듬을 잘못 골라서 탈락한 적이 있었다는 기억이 박정민에게 있는데, ‘쇼미더머니’ 탈락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지만, 고향인 변산에 대한 기억을 상징적으로 암시한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화해를 하는데 필요한 마음의 시간이 아직 채워지지 않은 박정민은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 장항선(학수부 역)이 더 미워지는데,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관객들은 크게 공감할 것이다.
 
아직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있는데 채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덜컥 용서를 구했기 때문에, 더 미워할 것이 남아있는데 이젠 더 이상 미워하면 안 될 것 같으니 답답하고 짜증이 나 아버지를 더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김고은(선미 역)이 박정민에게 박정민이 아버지와 똑같다고 말한 것에 대해 박정민이 광분하는 이유는, 심리적인 아킬레스건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더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용서할 수도 없는 난감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과 아버지의 공통점을 언급하고 연결했기에 더욱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난감해지는 것이다.
 
◇ 랩으로 만들어진 음악영화, 시적인 랩과 대화가 주는 문학적 서정성
 
<변산>은 랩으로 만들어진 음악영화라고 볼 수 있다. 스토리텔링이 랩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다른 영화였으면 박정민의 내레이션으로 표현됐을 내면의 이야기가 박정민의 랩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영화에 몰입하면 박정민의 랩은 중독성이 있게 다가오는데, 자연스럽게 관객의 마음을 파고드는 연기를 할 줄 아는 박정민은 <변산>에서 랩을 통해서도 그런 자신의 장점을 발휘한다.
 
랩, 소설, 시, 음악은 정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변산>에서 중요한 키워드인데, 시적인 랩, 시적인 대사가 주는 서정성은 음악과 함께 시너지를 낸다. 랩이 많기 때문에 다른 음악영화와는 달리, 노래를 함께 부르며 즐기는 싱어롱 관람의 기회가 만들어지기에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완성된다.”라는 김고은의 대사는 여러 번 반복된다. <변산>에서 이 대사가 단 한 번 나온다면 확실한 암시의 기능을 했을 것인데, 여러 번 반복되면서 암시의 반복인지 아니면 역암시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인지 호기심을 가지게 만든다. 김고은의 첫사랑은 무척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 시대를 뛰어넘어 청춘에게 관심을 가진 이준익 감독이 전달하는 메시지
 
‘잘 사는 것이 복수다’라는 영화 속 메시지는 이준익 감독이 청춘들에게 정말 전달하고 싶은 말이라고 느껴진다. 최근 청춘 3부작 <동주>, <박열>, <변산>을 잇달아 선보인 이준익 감독은 시나리오의 힘, 젊은 배우와의 시너지, 자본을 남발하지 않으면서 완성도 높은 영화를 찍는 마력을 보여주고 있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을 직접 관람하기 전에는 <동주>와 <박열>은 <변산>과 다른 장르의 영화로 앞선 두 작품의 흥행의 후광을 얻기 위한 마케팅 방법을 선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관람하면 세 작품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연결되는지 직접 알 수 있다.
 
신현빈(미경 역)과 고준(용대 역)의 연기가 살아있다는 점도 이준익 감독의 마술처럼 느껴진다. 욱하고 센 언니의 포인트 발산과 함께 내성적인 면도 표현한 신현빈과, 위협적이면서도 허당기 또한 실감 나게 표현한 고준의 연기가 돋보이는 것은, 다른 영화가 아닌 이준익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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