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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대사전달력이 좋은 김정호! 부조리극의 몰입도를 높이다

발행일 : 2018-04-21 00:06:29

소극장 산울림 개관 33주년 기념공연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가 4월 19일부터 5월 20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 중이다. S. 베케트(Samuel Beckett) 원작, 임영웅 연출로 무대에 오르는 극단/소극장 산울림의 스테디셀러 작품이다.

올해는 블라디미르(디디) 역의 김정호 배우가 새로 합류했는데, 뛰어난 대사전달력 및 가사전달력으로 부조리극에서의 다른 특징적인 캐릭터들의 대화를 전체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무대와 관객석을 더욱 밀접하게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 공연 처음부터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관객들과 공유하는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원작자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적인 부조리극이다. 극 초반부터 에스트라공(고고)(박상종 분)의 신발이 벗겨지지 않는데, 처음부터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관객들과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산울림 소극장은 반원형 스타일의 소극장으로 관객석과 무대가 마주 본다기보다는 관객석이 무대를 감싸고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런 장면은 공연 초반부터 정서를 만드는데 영향을 준다.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대단한 일을 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는 장엄한 과정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고고가 없으니 이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디디는 양가감정을 느낀다.

양가감정은 같은 대상에 대해 서로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뜻한다. 늘 같이 있던 고고가 없으니 허전하고 이상하지만, 자신만의 시간을 오롯이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좋은 감정을 느끼는 양가감정의 관계는 실생활에서는 애증의 관계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이제 뭘 해야 하는지에 고고와 디디는 집중한다. 무언가 꼭 해야 할 필요가 없어도 해야 할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마음에 안정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신발을 신으면 발이 아프다고 하는 고고의 신발을 억지로 신도록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 새로 합류한 김정호! 높은 대사전달력으로 부조리극의 몰입도를 높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이번 시즌에는 블라디미르(디디) 역으로 김정호가 처음 합류했다. 높은 대사전달력을 발휘한 김정호는, 악기의 연주 없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도 높은 가사전달력을 발휘했다.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집중하고 듣지 않아도 잘 들리는 김정호의 대사는 분명히 연극적인 대사이지만 다분히 일상적인 톤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대사이다. 다른 모든 배우들이 캐릭터에 맞는 특징적인 어투를 사용하는데, 지속적인 재공연으로 인해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에 서면 이제는 박상종, 이호성, 박윤석이 아닌 에스트라공, 포조, 럭키로 먼저 보이는 배우들과 관객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호는 정말 탁월한 캐스팅이라고 생각된다.

첫 참석, 첫날 공연부터 탁월한 친화력과 몰입도를 보여준 김정호의 블라디미르는 더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김정호 버전의 현재 블라디미르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무척 좋은 선택일 수 있다고 느껴진다.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소년 역의 아역배우 이민준 또한 이번 시즌 <고도를 기다리며>에 처음 출연했는데, 연기파 대선배들과 실전 무대에 계속 같이 선다는 것은 어떤 연기 수업보다도 이민준을 더 크게 키워줄 것이다. 이민준이 고도 키즈로 성장할지 기대를 가지게 된다.

◇ 버려지기보다 훼손되기를 선택한 럭키, 그런 럭키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포조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포조는 사람을 동물처럼 대하는 희극적인 인물이다. 럭키가 버림받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럭키가 짐을 계속 들고 있는 이유는 버려지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포조는 말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이런 장면은 부조리극이기 때문에 억지 상황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인간 내면의 무의식적 선택을 고려할 때 사실은 무척 중요한 포인트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람은 실제로 버려지기보다는 훼손당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훼손당하는 고통보다 버려진다는 고통을 참기 어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없는 포조는 “이 돼지 같은 놈아”라는 말의 반복하는데, 다른 사람이 그런 말과 행동에 동조한다는 점은 실제 사회에서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악용하는 포조를 보면서, 세상의 많은 포조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사진=극단/소극장 산울림 제공>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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