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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무용] 창작산실 무용(1) ‘Perfect Death’ 몸의 움직임으로 죽음에 직면하다

발행일 : 2017-12-09 17:08:32

2017 창작산실 무용 ‘Perfect Death’가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내년 3월까지 연극, 무용, 뮤지컬, 오페라, 전통예술 분야로 펼쳐질 이번 창작산실의 첫 번째 작품으로 GROUND ZERO Project가 만들었고, 전혁진이 안무 및 연출을 맡았다.

창작산실의 첫 작품의 소재로 완벽한 죽음을 선택했는데, 무대 장치 설치 때문에 정해진 순서인지 아니면 어떤 특정한 메시지가 있는지는 앞으로의 작품을 보며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창작산실이기 때문에 가능한 무대 공연

‘Perfect Death’가 공연되고 있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극장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관객석이 있는 일반적인 구조로 관객석은 고정형이 아닌 이동이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관객석과 무대의 방향을 180도 바꿨고, 관객들은 백스테이지를 통해 새로 바뀐 관객석으로 들어가야 한다. 상대적으로 좁은 통로를 지나면서 기존 관객들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을 처음 찾은 관객 모두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무대와 관객석이 바뀐 이유는 직접 공연을 보면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세팅은 창작산실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단 세 번의 공연을 위한 신작 무용 작품에서 이런 무대 변형은 비용적인 면과 준비 과정을 포함한 극장 대관 기간 등의 제약으로 이뤄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창작산실은 새로운 작품을 발굴한다는 의미를 가진 프로젝트인데, 단순히 작품을 선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과정에서 아직 자본력을 활용하기에는 쉽지 않은 아티스트에게 창작의 제한을 다소나마 줄였다는 점은 더 큰 의의라고 볼 수 있다.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안무자가 완벽한 죽음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안무자가 완벽한 죽음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완벽한 죽음이란 무엇일까? 삶을 완벽하게 마무리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죽음을 완벽하게 실현한다는 의미일까? 기존과는 다른 무대에서 ‘Perfect Death’가 공연되기를 기다리면서 관객들이 한 번쯤은 속으로 질문해볼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죽음 앞에서는 두려워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죽음을 무용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몸의 움직임으로 죽음에 직면한다는 것을 뜻한다. 디테일한 시야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죽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을 위해 움직임을 표현하는 예술적 아이러니를 ‘Perfect Death’는 담고 있는 것이다.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전혁진 안무자는 기획의도에서 “죽음에 관한 탐구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그려보고자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안무는 원초적인 구상이라기보다는 다소 상징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돼 있다.

공연의 후반부에 내레이션을 통해 말이 직접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는 하지만 그 말 또한 다분히 상징적이고 추상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Perfect Death’는 관객의 성향에 따라 다른 느낌과 감동을 줄 수도 있다.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나의 죽음을 의미 있게 기억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의미 있는 타자’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Perfect Death’의 관객들은 단순히 관람자의 지위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반영하고 기억해주는 거울이면서 감정의 저장자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 사람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음색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첼로, ‘Perfect Death’의 깊은 울림을 안무의 공간에 채우다

첼로는 사람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음색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악기이다. 굵고 진한 울림으로 마음속을 파고들 수도 있으며, 너무 깊게 들어가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악기이다.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erfect Death’에서 첼로는 초반에 소음 같은 음향을 만들어 무대의 정서에 청각적으로 기여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안무에 반응했던 첼로는 빠른 움직임의 안무로 변화할 때는 선율이 만들어내는 정서를 배가했다.

이 작품에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거울로 반사된 조명만 받으며 안무가 펼쳐지는 장면이 많은데, 첼로 또한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감각적으로 연주되는 시간이 있다. 완벽한 죽음으로 가는 과정 또는 결과에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완벽하게 그 기능을 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안무자는 표현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Perfect Death’ 공연사진.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실제로 죽음에 이를 경우 청각이 가장 끝까지 살아있다는 경험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Perfect Death’을 보면 움직임은 물론 무대 위에 무용수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확인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첼로의 울림이 강렬한 시간이 있는데, 완벽한 죽음 앞에서의 청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Perfect Death’는 추상적이며 상징적인 면이 많기 때문에 안무자의 의도를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 각자가 그냥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더욱 감동적일 수도 있다. 작품을 만든 것은 아티스트이지만, 관객석에서 감동받는 순간 그 작품은 관객의 한 명인 내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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