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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 직면하기 어려운 현실, 극중극의 투사로 풀어내다

발행일 : 2017-12-01 01:37:12

쇼플레이 제작, 오픈리뷰, 마케팅컴퍼니아침 주관 ‘베어 더 뮤지컬(bare the musical)’이 11월 28일부터 내년 2월 25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공연 중이다. 고등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지만 편하게만 볼 수는 없는데, 등장인물들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직면하기 어려운 뮤지컬 속 문제들은 관람하는 관객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관객들은 긴장감을 가지고 집중해서 관람해야 하고, 마음속에서는 회피하고 싶은 상황도 직접 눈으로 봐야만 하기 때문에 가볍게 관람하기는 쉽지 않은데, 극중극의 투사, 재미있는 안무를 통해 긴장을 이완하며 조절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베어 더 뮤지컬’ 아이비 역 양서윤, 허혜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베어 더 뮤지컬’ 아이비 역 양서윤, 허혜진. 사진=오픈리뷰 제공>

◇ 직면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 엇갈린 사랑과 우정 사이에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 듣고 나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돼 두려운 이야기,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됐고 직면 후의 상황을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가 ‘베어 더 뮤지컬’에는 다양하게 담겨있다.

동성 친구인 피터(윤소호, 강찬, 정휘 분)의 마음을 받아들인 킹카 제이슨(고상호, 임준혁, 노윤 분)은 피터가 커밍아웃 해 당당하게 관계를 밝히려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려고 한다.

‘베어 더 뮤지컬’ 피터 역 윤소호, 강찬, 정휘. 사진=오픈리뷰 제공 <‘베어 더 뮤지컬’ 피터 역 윤소호, 강찬, 정휘. 사진=오픈리뷰 제공>

또한, 예쁜 외모로 인기와 질투를 함께 받는 아이비(양서윤, 허혜진 분)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제이슨이 남자가 아닌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었으면, 가장 인기 있는 아이비가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했을 때 그 마음에 바로 응답했을 수도 있다.

피터의 엄마인 클레어(정영아, 도율희 분)는 진실을 거부한다. 아들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이미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확인하고 싶지 않다. 피터의 말에 직면한다는 것은 피터의 마음을 인정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뜻할 수 있기에, 아예 듣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강도가 훨씬 센 충격이었으면 회피 이상의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다.

아이비는 맷(이동환, 도정연 분)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맷의 고백을 듣고 싶지 않다. 자신의 마음은 이미 제이슨에게 가 있기 때문에, 맷의 고백에 직면해 거절하고 싶은 마음조차 감당하기 싫은 것이다.

‘베어 더 뮤지컬’ 제이슨 역 고상호, 임준혁, 노윤. 사진=오픈리뷰 제공 <‘베어 더 뮤지컬’ 제이슨 역 고상호, 임준혁, 노윤. 사진=오픈리뷰 제공>

자신이 좋아한 제이슨이 남자 또한 좋아한다는 사실에 본의 아니게 직면 당한 아이비는 멈칫하게 되는데, 아이비가 메인 주인공인 이야기였다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거나 정신을 잃고 바로 쓰러지는 동결 반응이 펼쳐졌을 것이다.

직면하기 두려워하는 마음은 실제로 누구나 있을 수 있다. 직면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면 돌파를 하는 경우 주목받는 것이기도 하다. ‘베어 더 뮤지컬’의 이야기는 제이슨, 아이비, 클레어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직면하기 무척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관람하는 관객들이 많다는 것은 작품이 가진 높은 완성도와 함께, 직면하지 못하는 우리 각자의 현실을 무대 위 제이슨, 아이비, 클레어에 투사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베어 더 뮤지컬’ 윤소호, 고상호. 사진=오픈리뷰 제공 <‘베어 더 뮤지컬’ 윤소호, 고상호. 사진=오픈리뷰 제공>

◇ 극중극 형태를 통한 투사, 안무를 통한 완급 조절과 강약 조절

‘베어 더 뮤지컬’에는 등장인물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는 극중극의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점은 극중극이 스토리텔링을 진행하게 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마음을 투사해 표현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베어 더 뮤지컬’ 속 인물이 ‘로미오와 줄리엣’ 배역은 분리해서 봐도 이야기가 되고, 같은 인물이라고 봐도 이야기가 성립된다. 내면을 전달하기 위해 똑같은 이야기를 부연하기보다는 비유와 감정이입을 동시에 사용한 방법은 똑똑한 선택이다.

‘베어 더 뮤지컬’ 강찬, 노윤. 사진=오픈리뷰 제공 <‘베어 더 뮤지컬’ 강찬, 노윤. 사진=오픈리뷰 제공>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에는 지루해질만하면 등장해 웃음을 선사하고 긴장을 이완하는 캐릭터가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베어 더 뮤지컬’에서 신부(제병진 분)와 샨텔 수녀(정영아, 도율희 분)가 가끔 웃음을 주기는 하지만 웃음 전담 캐릭터는 아니고, 실제로 그 역할을 안무가 담당한다.

진지한 이야기가 가진 긴장감을 말로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시각적으로 완충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인데, 뮤지컬의 장점을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깔깔 웃게 하지도 않으면서 대놓고 펑펑 울 수 있게 하지도 않으면서, 재관람률을 87%에 육박하게 만드는 작품이 가진 힘은 놀랍다.

‘베어 더 뮤지컬’은 기숙학교의 이야기로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이 많은데, 스타킹으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표현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흰색 줄무늬 세 개가 있는 검은색 스타킹의 아이비는 단아하면서도 끝까지 일관되게 밋밋하지는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베어 더 뮤지컬’ 정휘, 임준혁. 사진=오픈리뷰 제공 <‘베어 더 뮤지컬’ 정휘, 임준혁. 사진=오픈리뷰 제공>

나디아(김지혜 분), 타냐(이다솜 분), 카이라(박시인 분), 다이앤(구다빈 분), 로리(권소이 분)의 성격 또한 스타킹 또는 양말의 스타일로 추정할 수 있다. 루카스(박성광 분), 잭(김영호 분), 앨런(김찬종 분) 또한 교복의 작은 변화로 서로 다른 캐릭터를 표현하고 있다.

세상 앞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세상 앞에서 숨을 수밖에 없는 현실, 마음이 끌리는 사랑과 몸이 끌리는 사랑, 이런 상반된 모습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관객들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가 점차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만든다.

피터는 제이슨에게 “나한텐 니가 전부야.”라고 말한다. 무척 아름답고 무척 감미롭지만 무척 마음 아픈 말이기도 하다. 상대가 그렇게 받아주는지에 관한 제1차적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세상에서 그냥 인정해줄 수 있는지의 제2차적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니가 전부가 아니게 될 수도 있고, 나 또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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