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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미스테리어스 스킨’ 대상관계이론 위니콧의 ‘멸절’과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관점에서

발행일 : 2017-11-22 17:45:38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렉 아라키 감독의 ‘미스테리어스 스킨(Mysterious Skin)’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그냥 관람할 때도 마음이 매우 아프지만, 닐(조셉 고든 레빗 분)과 브라이언(브래디 코베 분)의 내면의 선택이 무엇을 뜻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 슬픈 공감을 넘어 분노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본지는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의 심리학자 중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이 말한 ‘멸절(annihilation)’,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 및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의 개념을 통해 ‘미스테리어스 스킨’을 살펴보기로 한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 도날드 위니콧이 말한 ‘멸절’과 ‘충분히 좋은 엄마’의 개념

아이는 태어났을 때 자아라는 개념을 아직 가지지 못하고 있다. 엄마와 자신은 하나의 존재였으며 자신을 인식하기 전에 상대인 엄마를 먼저 인식한다.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던 아이가 절대적 의존성이 필요한 시기에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 같은 극도의 공포인 멸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멸절을 느끼는 이유는 아직 독립된 자기가 되기 이전에 정서적, 육체적으로 한 몸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와의 육체적인 분리를 인지하게 된 상태에서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 자아가 없는 상태에서의 계속 보호받고 있지 않다고 느껴지는 분리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여겨지는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이때 ‘충분히 좋은 엄마’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해 ‘안아 주기(holding)’, ‘다루어 주기(handling)’, ‘대상 제시(object-presenting)’의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고 위니콧은 말한다. 안아 주기는 신체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을 모두 포함하며, 대상 제시(object-presenting)는 엄마가 외부 세계를 유아에게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만약 이때 아이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경우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들게 되는데,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인 질서의 옳고 그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본 기질을 충실히 따르느냐를 뜻하는 것이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 같은 경험을 통한 다른 반응, 전제된 조건의 차이는 엄청나게 다른 방향으로 삶을 이끌 수 있다

‘미스테리어스 스킨’에서 닐과 브라이언은 어릴 적 함께 겪은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두 남자아이는 성인 남자인 야구 코치(빌 세이지 분)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브라이언에게 그 5시간의 기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외계인들에게 납치돼 기억을 잃었다고 믿는다. 반면에 닐은 생생하게 그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게이가 돼 남자들에게 몸을 팔기도 한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닐과 브라이언, 두 사람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고 어떤 다른 점이 있어서 이렇게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브라이언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기 때문에 기억을 가둬버렸는데, 그렇다면 닐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지 않았던 것일까? 물론 결코 그렇지 않다.

그냥 생각하면 특정 개인의 선택이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대상관계이론 중 위니콧의 이론을 적용하면 명확하게 그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경험을 통해 구축된 심리학 이론은 헛갈리는 사항,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표현 못하는 상황을 명확하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 코치의 성폭력부터 시작된 것 같지만, 그 이전에 그들에겐 아버지의 부재가 있었다

브라이언이 어린 시절 아버지는 크게 다치고 온 아들을 위로하고 보호하기보다는 겁쟁이라고 하면서 멸시한다. 스스로 견디기 힘든 순간에 브라이언에게는 자신을 보호해줄 아버지는 없고,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난도질하는 아버지만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닐은 아버지를 아예 거론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완벽한 아버지의 부재를 뜻한다. 브라이언에게는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 안전하지 않고 완벽하지 않은 아버지가 있었다가 사라지지만, 닐에게는 그런 아버지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프로이트 이론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절대적인 것이지만, 대상관계이론은 어머니의 역할에 더 초점을 두기 때문에 아버지의 부재가 있더라도 충분히 좋은 엄마가 있을 경우 문제가 치유되고 봉합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미스테리어스 스킨’에서 닐의 엄마는 아들이 몰래 쳐다보는 것도 모른 채 애인과 그네에서 정사를 나누고, 애인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들을 야구부에 보낸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브라이언의 엄마는 브라이언이 아버지에게 겁쟁이라는 핀잔과 모욕을 당했을 때 브라이언을 보호하고 마음의 안전을 확보해주지 않고 겁쟁이라는 핀잔을 듣게 된 이유인 야구를 그만두게 만든다.

브라이언에게 엄마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을 파괴하는 존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떤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존재도 아닌 것이다. 닐과는 달리 브라이언은 부분 관계로서 엄마에게 의존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 코치는 닐에게 한때 ‘충분히 좋은 엄마’였다가 성폭행범이 됐지만, 브라이언에게는 그냥 성폭행범이었다

‘미스테리어스 스킨’에서 닐은 야구 실력을 발휘할 때 다른 사람의 환호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코치에게 인정받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코치는 닐에게 자기 대상이었던 것이다.

8살 닐에게 야구 코치는 친구이자 아빠이자 엄마였다.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한 닐과 같은 눈높이에서 놀아주고, 엄마는 사주지 않는 과자를 먹으라고 주기도 하고, 과자 봉투를 뜯다가 쏟았을 때도 코치는 혼내기보다는 다른 과자를 뜯어서 장난치며 공중에 뿌렸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충분히 좋은 엄마’는 생물학적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역할을 하는 대상에 해당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코치는 닐을 성폭행하기 전까지 닐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빈 공간 또한 코치가 채워줬던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 엄마를 잃은 세상(엄마가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세상)에서 닐에게 코치는 완벽한 엄마이자, 완벽한 아버지이자, 완벽한 친구였던 것이다. 자신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줬고, 자아를 인정하게 만들어 준 유일한 존재였던 것이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그렇기 때문에 닐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코치를 훼손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훼손하기로 한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코치를 강간범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게이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닐이 코치와의 혐오스러운 시간을 견디지 못해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기억상실을 선택했다면, 자신을 인정해줬던 코치도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또다시 멸절을 겪게 됐을 것이다.

닐이 게이로 살아게 된 이유가 자신의 내면에서 코치를 훼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닐은 참 자기가 아닌 거짓 자기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닐이 거짓 자기로 살아가는 이유가 참 자기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파진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에서 닐을 보면서 잘못된 시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게이가 됐다고 비난하거나, 원래 그런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회피하지 않고 모두 기억하고 그런 길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닐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소울메이트이자 범죄를 공유하는 진실한 파트너였던 웬디(미셸 트라첸버그 분)는 닐이 심장 대신 깊은 블랙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대상관계이론의 위니콧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핵심을 관통하는 표현이다.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미스테리어스 스킨’ 스틸사진. 사진=찬란 제공>

브라이언은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하기 전에 코치에게 특별한 애정을 받지 못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제거할 수 없는 친밀한 존재가 이전부터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브라이언에게는 보호라는 입장에서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의존할 수 있는 엄마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상처의 기억을 브라이언을 가두게 된 것이다. 브라이언과 닐의 선택 모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슬픔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넘어서 분노의 마음 또한 생긴다. 주범은 분명히 있지만, 그들 모두가 공범이라는 생각도 든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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