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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성 트라우마로 인한 인간관계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발행일 : 2017-11-21 15:16:49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은 세계적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 분)가 사건 의뢰를 받고 오리엔트 특급열차에 탑승했을 때 벌어진 기차 안 살인사건 속 진실을 찾기 위한 추리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누가 범인인지에 대한 추리로 시작한 이야기는,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를 찾아가면서 13명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용의자의 내면의 아픔과 상처의 트라우마 속으로 들어간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 당위와 명분보다 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하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포와로는 추리를 할 때 당위와 명분보다는 이익에 초점을 두는 명확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익에는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심리적 이익, 양심의 가책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 범죄는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라고 반복되는 명제는 관객들이 포와로의 추리에 공감을 느끼며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영화 시작부에 영화의 톤을 선명하게 알려준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아이가 뛰어갈 때의 신나는 음악은 박진감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음악이 없었다면 영상만으로는 이런 분위기를 형성할 수 없었을 것으로, 영화에서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험하게 해주는데, 13명의 용의자를 추리하는 과정에서의 음악 또한 그러하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달걀의 크기를 재는 포와로의 모습은 포와로의 성격을 명확하게 전달하는데 옳고 그름이 명확해 중간이 없는 사람으로 설정했기에 오히려 반전에 임팩트와 개연성을 부여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번 사건으로 누가 득을 볼까?”라는 포와로의 말은 이 작품을 벗어난 일상생활에서의 판단 기준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위와 명분,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이익에 의해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 사건성 트라우마와 인간관계 트라우마

트라우마는 특정한 사건에 의해 발생하는 ‘쇼크 트라우마(shock trauma), 사건 트라우마(incident trauma)’와 반복된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대인관계 트라우마(interpersonal trauma)’가 있다.

임팩트 있는 사건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성 트라우마보다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된 지속적인 관계성 속에서의 대인관계 트라우마가 더 위험하고 해결하기 어렵다. 사건성 트라우마는 사건에서 빠져나오면 상대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대인관계에서 받은 상처는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 복수라는 범죄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지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복수라는 범죄에서 볼 수도 있지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영화 속 살인은 이전 살인의 살해자를 오리엔트 특급열차에서 살인하는 보복 살인, 복수 살인의 성격을 띠고 있다.

나에게 잘해준 특정 인물이 갑자기 살해된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가져온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일단 사건성 트라우마라고 볼 수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그런데 중요한 점은, 영화 속 사건이 사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인간관계가 감당할 수 없이 훼손됐다는 점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이전의 지속적인 인간관계 속 반복된 극도의 두려움이 인간관계 트라우마를 만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좋았던 인간관계가 순식간에 훼손됨으로 인해 인간관계를 복구할 수 없는 트라우마로 연결된 것이다.

사건성 트라우마가 인간관계 트라우마까지 유발했다고 볼 수 있는데, 영화 속 인물들이 죄에 대해 응징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이들에게 복수는 단지 보복의 의미를 지닌 게 아니라 마음에서 빠져나올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단지 복수가 아닌 살기 위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다시 선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 옳음과 그름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되는데, 사건보다 인간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관람하는 관객들은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자신이 마음의 짐을 진 포와로의 역할 또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특급열차에 탄 등장인물들은 이전의 첫 번째 살인사건으로 인한 사건성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인간관계 트라우마에 이어, 열차 안에서 벌어진 두 번째 살인사건으로 인한 또 다른 사건성 트라우마를 계속해서 겪을 수 있었는데, 포와로는 그 연결고리를 끊으면서 그들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다는 점은 의미 깊게 되뇔 필요가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사진.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 누가 그들의 죄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머릿속 생각, 가슴속 느낌은 관객의 성향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인간의 마음에 난 균열에 대해 느끼는 분노와 고통의 여부와 크기도 다를 수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함무라비 법전의 기본 정신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들의 죄를 단죄해야 하는지 용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하나 더 궁금해지는 질문이 떠오른다. 누가 그들의 죄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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