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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서울독립영화제(07) ‘히치하이크’ 누군가 내 삶의 길 위에서 나를 데려가 준다면

발행일 : 2017-11-10 14:54:37

정희재 감독의 ‘히치하이크’는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2017, SIFF2017) 본선경쟁 부문의 장편 영화이다. 재개발 지역에 살면서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포기한 채 죽을 날을 기다리는 아빠 영호는 딸 정애(노정의 분)에게 포기하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정애는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엄마 영옥을 찾아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막다른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태워준다면(히치하이크) 그로 인해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히치하이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히치하이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히치하이크’에서 정애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자신을 돌봐줘야 할 아빠는 치료비로 인한 부담을 딸에게 남기지 않기 위해 삶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하고, 엄마는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다 결국 엄마를 찾기는 하지만...

엄마를 찾으러 간 곳에서는 끔찍한 위험에 빠질 뻔했고, 친척을 비롯해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살면서 정애처럼 인생의 막다른 곳에 몰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그런 사람도 꽤 있을 것이고, 심리적인 면까지 확대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히치하이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히치하이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히치하이크’의 정애를 보면서 나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아픔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희망이라고 기대했던 것이 절망이 되면 더 큰 상처와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바닥에 내려왔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락은 없을 것 같아도, 지하실로 또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런 상황과 경제적 추락은 더욱더 큰 심리적 추락으로 이어진다.

‘히치하이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히치하이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가장 큰 어려움은 이럴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내가 길이 아닌 곳에서 헤맬 때 누군가 그 길 위에서 나를 히치하이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정말 어려울 때는 정말 필요할 때는 나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히치하이크’에서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큰 파도의 격랑으로 다가올 수 있다.

◇ 열여섯 살 소녀의 성장기, 누군가 마음을 열고 싶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정애는 친구 효정(김고은)의 친부로 의심되는 현웅(박희순 분)을 만나 그의 가족이 되고 싶다. 방어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정애는 현웅을 만나고부터 부드러우면서도 차분하게 바뀌는데, 내적으로는 오히려 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히치하이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히치하이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알아줄 것 같은 사람이 한 사람만 있더라도, 나는 그로 인해 차분해지고 내적인 내 마음의 파편을 추스를 수 있고, 그러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영화는 전달한다.

◇ 노정의, 배우로서의 그녀의 성장 또한 기대하며

노정의는 그런 디테일한 감정을 몰입해 표현하는데, 연기 경력이 꽤 많은 배우들에게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통해 정서를 살리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내면을 표현하고 통제하는 능력은 그녀의 연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히치하이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히치하이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히치하이크’에서 감정의 폭을 의도적으로 조절했을 수도 있고, 감각적으로 조절했을 수도 있고, 철저하게 감독의 디렉팅을 따라갔을 수도 있는데, 어떤 경우이든 노정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박희순은 노정의와 함께 하는 장면에서 무채색의 연기를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관객의 정서적 초점이 노정의에게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배려의 연기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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