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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1) ‘수혈’ 살기 위해 감염돼야 한다?

발행일 : 2017-07-20 23:24:14

올리비에 마르세니 감독의 ‘수혈(Arterial)’은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섹션의 단편영화이다. 프랑스, 대만 작품으로 자국 이외의 외국에서는 처음 상영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International Premiere)로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다.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신선한 아이디어를 소재로 채택한 작품

‘수혈’은 인간의 피와 장기가 밀거래되는 근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피가 밀거래된다는 것은 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장기가 밀거래된다는 것은 현재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피와 장기가 밀거래 된다는 것만으로는 크게 신선하지 않을 수 있고, 실제 ‘수혈’의 영상은 미래라고 보면 미래로 보일 수도 있지만 현재나 근과거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중요한 것은 피와 장기가 감염돼 손상된 비율이 높고, 신선한 피를 소유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설정이다. 신선한 피와 장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높은 가치로 평가받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노리는 사람들에 의해 죽을 수도 있는 위험 앞에 직면해 도망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수혈’에서 피를 팔려던 소녀는 차라리 자신의 피가 감염되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마음을 가진다. 깨끗한 피를 가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목숨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피를 감염시켜 위험으로부터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 카메라가 소녀를 바라보는 방향과 근접성은, 소녀의 가치와 소녀가 닥친 위험성을 동시에 반영한다

‘수혈’은 심장 박동을 연상하는 타악 리듬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는 걸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천천히 따라가는데, 근거리에 있는 소녀의 뒷모습에 초점을 맞춘 카메라는 다른 사람들과 배경을 희미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다.

소녀의 뒷모습에 집중해 다른 대상을 제대로 보이지 않게 만든 영상은, 등장인물들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영화 초반에도 긴장감을 고조하게 만들었고,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소녀가 쫓길 때 카메라는 소녀의 옆모습을 이전보다는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같이 달리면서 화면에 담는다. 뛰기를 멈춘 소녀가 빠르게 다시 걸을 때는 처음보다는 약간 벗어나 옆모습이 살짝 보이도록, 카메라는 화면 안에 소녀의 뒷모습을 담았다.

우연일 수도 있고 의도한 것일 수도 있는데, ‘수혈’에서 소녀가 상대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가지고 있을 때 카메라는 서서히 뒷모습을 가까이에서 따라가고, 소녀가 위급해지면 카메라는 뛰고 있는 동안의 옆모습을 약간 더 떨어져서 같이 달리면서 화면에 담고 있는 것이다.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 전사와 후사가 궁금해지는 이야기,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됐어도 전달이 용이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작품

‘수혈’은 30분의 상영시간에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지만, 전사와 후사의 이야기가 모두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감염이 됐는지,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숨어서 지내는지도 궁금하고, ‘수혈’이 끝난 후 어떤 이야기가 남아있을지도 궁금하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혹은 웹툰으로 표현됐어도 재미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소녀의 표정과 달리는 장면, 바닷가 공판장의 모습과 대형 선박의 모습은 만화적으로 확대되거나 강조되면서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고 상상된다.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수혈’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수혈’에서 쫓기는 사람이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었으면 영화의 정서는 어떻게 변했을까? SF적인 요소보다 절망적인 분위기가 강조된 누아르의 감성이 더욱 부각됐을 수도 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관조적으로 혹은 등장인물을 응원하면서 바라보기보다는, 처절함이 묻어나는 분위기 속에서 우울하게 현실적으로 바라봤을 수도 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Arterial’인데, 한국어 제목은 왜 ‘수혈’이라고 표현하면서 디테일한 정서를 바꿨을까? 관객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었을 것인데, 한국어 제목에 집착하다 보면 영화의 뉘앙스를 좀 더 늦게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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