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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훔쳐보는 사람을 또다시 훔쳐보는 연극 ‘인간’(2)

발행일 : 2016-12-23 19:24:38

연극 ‘인간’은 단 두 명이 펼치는 2인극이다. 2인극은 두 사람의 관계와 대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어떤 무대장치와 설정보다도 배우에 영향력이 강하다. 모노드라마는 단 1명이 등장하기 때문에 배우의 영향력은 모노드라마가 더 크다고 볼 수도 있지만, 관계성에 근거한 배우의 영향력은 2인극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

‘인간’ 연습사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연습사진.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이번 공연이 펼쳐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무대의 일부를 관객석으로 만들었다. 3면 관객석, 4면 관객석과는 다르게, 2면 관객석은 마주보는 관객들에게도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관객은 무대를 바라보면서, 무대를 바라보는 다른 관객을 같이 바라보게 된다.

유리 감옥에 갇힌 라울(고명환, 오용, 박광현, 전병욱 분)과 사만타(안유진, 김나미, 스테파니 분)을 훔쳐보는 관객을 다른 관객은 또다시 훔쳐보게 되는 것이다. 이번 공연의 관객석 배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의도한 라울과 사만타 훔쳐보기에서 하나 더 진도를 나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인간’ 고명환(라울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고명환(라울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 2인극의 연극, 서로 마주 보는 2면의 관객석

무대는 1면이 관객석인 경우가 가장 많으나, 2면 관객석을 넘어, 3면 관객석, 4면 관객석인 무대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당놀이가 4면 관객석으로 공연되는데, 관객석이 다 보이니 오히려 다른 관객석의 관객들 반응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권투 경기, 레스링 경기 등의 스포츠 경기에서 링 주변 4면이 모두 관객석일 때, 다른 관객들과 같이 분위기를 공유하기는 하지만 다른 관객의 표정과 반응에 집중하지는 않고 경기 자체에만 몰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인간’ 오용(라울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오용(라울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그런데 ‘인간’은 단 2면의 관객석이 서로 마주해 바라보는 방향으로 설치됐다. 2개 진영에서 서로 마주보는 관객석은 2인극인 ‘인간’과 심리적으로 연결된다. 관객들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본인이 무대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반대편 관객이 무대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원래 무대였는데 특설 관객석에 있는 관객들은 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관객석 맨 앞과 무대가 정말 작은 소극장처럼 가깝게 설치됐다. 배우와 관객과의 반응뿐만 아니라 관객끼리의 반응도 무척 생동감 있고 생생하게 전달된다. 새로운 공간의 무대를 만든 ‘인간’은, 무대와 관객석, 관객석과 관객석도 새로운 공간으로 창출한 것이다.

‘인간’ 박광현(라울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박광현(라울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 서로 색깔이 다른 4명의 라울, 서로 다른 매력을 선보이는 3명의 사만타

같은 공연에서 단독 캐스팅이 아닌 더블 이상의 캐스팅이 될 경우 비슷한 이미지의 배우가 캐스팅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만약 다른 이미지의 배우가 캐스팅될 경우, 대부분 일정 부분 정해진 조합을 통해 팀으로 무대에 오른다.

그런데, ‘인간’에 캐스팅된 배우들은 각자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색깔을 가진 4명의 라울과 서로 다른 매력을 선보이는 3명의 사만타는 정해진 짝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른 조합으로 연기를 펼친다. 단 두 명이 등장하는 2인극인데, 모든 페어를 보려면 12번을 관람해야 한다.

‘인간’ 전병욱(라울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전병욱(라울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또한, 서로 마주보는 관객석의 특성상, 캐스팅 및 조합에 따른 재관람뿐만 아니라 좌석 시야에 따른 재관람까지 포함하면 24번을 관람해야 ‘인간’을 전부 관람했다고 볼 수 있다. 2인극을 모두 보기 위해 24번의 관람을?

배우들의 숨소리도 들릴 수 있는 거리에 관객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노출이 있는 사만타의 의상과 키스신 등에 있어서 배우들이 민망해할 수도 있고, 몰입해 감정이입된 관객들이 오히려 더 민망해할 수도 있다.

‘인간’ 안유진(사만타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안유진(사만타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라울과 사만타 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은 관객들이 관람할 때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함과 동시에 위치에 따라 너무 민망하지 않게 보여야 한다. 더 많은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는 것보다, 더 많은 스킨십이 있는 연기를 하는 것보다. 이번 ‘인간’이 연기하기에 심리적으로 훨씬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배우는 자신의 에너지로 연기를 할 수도 있지만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관객의 에너지를 무대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관객의 표정은 일반적으로 무대 위 배우들을 바라보며 생기는데, 이번 공연은 다른 관객의 반응에 따라 관객석 표정이 바뀔 수도 있다.

‘인간’ 스테파니(사만타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스테파니(사만타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배우는 관객들의 에너지를 받기도 혹은 받지 않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의 배우들이 위대하게 생각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관객들과 제1차적 소통뿐만이 아닌 제2차적인 소통까지 함께 하거나, 혹은 정말 유리 감옥에 갇힌 것처럼 제1차적 소통과 제2차적 소통을 모두 차단하며 배역을 소화하기 때문이다.

베르베르의 상상력에 코드를 맞춰야 하는 배우와 관객은 매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될 수도 있지만, 직접 관람을 하면 너무 희곡적으로 흐르지는 않은 자연스러운 대사와 연결로 인해 극이 어렵다기보다는 재미있고 흥미롭다고 느껴진다.

‘인간’ 김나미(사만타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인간’ 김나미(사만타 역). 사진=그룹에이트 제공>

사만타 역을 맡은 김나미는 이번 ‘인간’이 인간에 대해 무척 많은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며 인간에 대해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사만타는 겉은 약간 사납게 말하나, 천상 여자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멈춤 동작에서 보이시한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대사를 하며 움직일 때는 사랑스럽게 보이는 ‘인간’의 김나미에게 사만타가 보인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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