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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발행일 : 2014-08-29 15:34:18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에버그린 스피드웨이. 60년쯤 된 ‘뼈대 있는’ 서킷이다. 미국 시애틀 타코마 공항에서 북동쪽으로 약 40분쯤 거리에 위치한,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최대 모터스포츠 대회 ‘나스카’가 열리며 수많은 카레이서들이 영광을 함께 나누던 곳이다. 원래는 경마장이었지만 자동차 경주용으로 개조했다. 그래서인지 서킷 주변은 말이 뛰놀 법한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말 관련 시설도 여전히 존재하며, 행사도 가끔 열린다.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물론, 에버그린의 주인공은 자동차다. 그것도 흔히 보기 어려운 차들이 이곳에 모인다. 화려하게 겉과 속을 치장한 튜닝카들이 각 잡고 줄지어 세워져 있다. 튜닝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그리고 차 오너들은 대부분 젊다. 아니 어리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철없어 보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에너지가 넘친다.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은 ‘꽤나’ 자유분방하다. 표정엔 즐거움이 가득하다.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Day 01- 에버그린 스피드웨이와의 첫 만남…

-7월 17일. 화창한 목요일 오후_


시애틀 날씨는 한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아 춥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따뜻했다. 사진 찍기도 좋고, 드라이브하기도 좋은 날씨다. 서둘러 차를 빌려 목적지인 ‘에버그린 스피드웨이(Evergreen Speedway)’로 향했다. 2014 포뮬러 드리프트(포뮬러 D) 시즌 5라운드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서다.

시차, 2시간 넘게 걸린 입국수속, 도로 공사, 교통 체증으로 인한 피로가 극에 달할 무렵 서킷에 간신히 도착했다. 그동안 봐왔던 으리으리한 일반적인 시설과는 거리가 있었다. 벌판에 덜렁 커다란 구조물이 놓여 있고, 널찍한 주차장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설이라는 곳을 의미하는 듯했다. ‘이런 곳에서 자동차 경주가 열린다니…’ 영화 속에서 보던 오래된 경마장을 떠올리면 오히려 찾기가 쉽지 않을까 싶다.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주차장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헤매던 중 한국타이어 북미법인 모터스포츠 담당 폴 조(Paul Jho)씨의 안내를 받아 스피드웨이 안으로 들어섰다. 요란한 타이어 굉음이 들린다. 몇몇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대회는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2박 3일간 진행된다. 따라서 토요일 경기가 결승전이다. 일반적인 모터스포츠 대회는 일요일에 결승전이 펼쳐지지만, 포뮬러 드리프트는 일정이 조금 다르다. 이미 연습을 마친 경주차들은 대형 트레일러 속 차고로 옮겨지고 있었다.

건물 위치와 분위기를 파악하는 정도로 마무리하고 숙소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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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2- 타이어 굉음이 여는 아침

-7월 18일. 햇살 따갑지만 공기는 선선한 금요일 오전_


오전 9시 45분부터 미디어 브리핑이 진행됐다. 코스 소개는 물론 서킷을 돌아다닐 때 주의사항과 취재구역, 안전규정 등 대회 전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미디어 조끼를 받았다. 코스에 들어가려면 필수다.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10시부터 연습이 시작됐다. 촬영 포인트와 트랙 내 이동방법 안내는 사진기자 ‘렉스(Rex)’가 도움을 줬다. 그의 뒤를 따라 여러 포인트를 옮겨가며 눈 앞에서 펼쳐지는 도로 위의 예술을 감상했다.

레이스 때 쓰는 타이어는 규격과 사용량 등에서 앞-뒤 차이가 있다. 경주차는 대부분 뒷바퀴 굴림 방식(FR)이어서 뒤 타이어가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경기를 치를 때 앞 타이어는 몇 번 바꾸지 않지만, 뒤 타이어는 평균적으로 앞쪽보다 10배쯤 더 바꾼다고 한다. 땅에 닿는 면적도 넓은 데다, 강력한 엔진의 힘을 노면에 전달하며 생기는 엄청난 회전 마찰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포뮬러 드리프트는 피겨스케이팅처럼 심사위원들이 선수들을 평가하는 경기다. 드리프팅의 속도, 각도, 선회 등 전반적인 연출력을 살핀다. 속도는 전체 평가의 10%쯤 비중이지만 속도가 느리면 멋진 퍼포먼스를 내기 어렵다. 중하위권 선수들의 드리프트 속도는 40마일 초반(약 65km/h)이었고, 상위권 선수들은 50마일 중반(약 88km/h)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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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전. 연습이 진행될 시간임에도 관중석엔 사람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었다. 정오를 넘기자 관중석 상단 그늘엔 꽤 많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퀄리파잉(예선, Qualifying)이 12시부터 시작되는데다 오후 3시부터는 선수들과 직접 만나 사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관중들과 소통하는 모터테이너”

늦은 식사를 끝내고 선수들의 사인회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약 45분 동안 진행되는 행사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짓말 좀 보태서 한 100미터쯤 돼 보였다. 선수들과 아는 척하며 중간에 끼어들면 몸에 문신 가득한 무서운 20대들이 마구 비난할 기세였다.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행사를 살펴보니 선수들의 포스터에다 사인 받는 건 팬으로서 초급과정이다. 이들을 위해 선수와 팀들도 알아서 종이와 펜을 준비해뒀다. 그리고 선수들과 ‘셀카’를 찍으면서 기념 티셔츠나 모자, 신발 등 옷가지에 받는 건 중급. 선수들이 쓰던 타이어를 주워와서 사인 받는 건 고급과정이다. 몇몇 인기 선수들에게 물으니 열외 과정으로 신체 ‘특정 부위’에 사인을 해 달라는 요청도 종종 있어서 난처하지만 즐거운 기억이란다. (사인을 해줬기 때문.)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그런데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는 걸까 궁금했다. 너덜너덜해진 타이어를 들고 다니던 고등학생들에게 “그 타이어는 어디다 쓸 거냐”고 물었더니 “선수들 사인 받아서 방에 둘 거다”, “사인 받을 거고, 방에서 테이블로 쓰려고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에 타이어를 둔다니… 분명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문화다.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그리고 팬들이 들고 다니는 타이어도 보이지 않는 경쟁이 펼쳐졌다. 선수들의 시즌 성적에 따라 폐타이어 인기도 달라지는 듯싶다. 종합 1, 2위를 달리고 있는 팀의 한국타이어와 3위 팀의 닛토타이어가 인기였다.

대회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경기를 끝낸 타이어들은 제조사가 회수한 다음 폐기처분 해야 하는데, 팬들의 요청이 있어서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사이드월에 구멍을 낸 다음 ‘잘 보이는 곳’에 따로 쌓아둔다고 한다. 구멍을 뚫는 건 재사용을 막기 위해서다.

[포뮬러 D 2편] 타이어는 대체 왜 가져가? 팬들과 소통하는 포뮬러 드리프트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씨 속에서도 선수와 팬 모두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특히 젊은 팬이 많은 탓에 선수들을 직접 만나서 소통하는 기회는 큰 추억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50여 명에 달하는 선수들이 줄지어 앉아 팬들을 기다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선수들 사이에서 팬서비스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다 유쾌한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광대’가 된다. 선수들 스스로가 “우리는 모터테이너”라고 강조한다. 모터스포츠에 참가하는 레이서지만, 엔터테이너로서 팬들을 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폼 잡고 앉아서 다가오길 기다리기보다 팬들과 함께 호흡하며 즐거운 추억을 함께 만드는 이런 적극적인 자세가 대회를 축제로 만드는 게 아닐까.

-결승전은 3편에서 계속… -

글,사진 / 시애틀(미국)=박찬규 RPM9 기자 sta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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